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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Sep 02. 2022

자전거 도둑

결국 얻고자 하는 게 뭐였나?

훔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 없었을 지라도 같이 동참하고 함께 행동한 것으로 이미 분명한 공범이다. 비록 악행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꺼림칙하고 게운치 않았다고 느꼈다면 선한 행위는 아니다. 이용당했다고 합리화 말라.


초등학교 4학년. 겨우 열 살을 넘긴 나이. 어른들이 보기엔 꼬마라고 해도, 정작 그때의 나는 크게 어리다는 생각은 없었다. 온 동네며 야산을 돌아다니고 별생각 없이 사는 평범한 아이였다. 가끔 무서운 어른들이 있긴 했지만, 어른들을 크게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우리 반 아아들의 절반 정도는 회사에서 지어 사원들에게 제공하는 아파트에 살았다. 사내 복지 차원에서 제공한 3층 건물의 14평 임대 아파트는 세대수가 2천 세대를 넘는 곳도 있고, 블록을 건너 4천 세대를 넘는 아파트 단지도 있었다. 그래서 같은 학교의 동창이면서 동시에 동네의 친구들이라 등하교 때 삼삼오오 어울렸다. 나 또한 그 아파트에 살았고, 특히나 우리 집은 학교로 올라가는 길의 제일 마지막 동에 살았기에 친구들은 등교하는 길에 내 이름을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며 학교 가자고 소리치면, 엄마는 서둘러 내 등을 떠밀었다. 학교에서 제일 가까이 살면서도 늘 지각하는 버릇은 아마 집을 나서면 금방 학교에 도착하리라는 내 나름의 계산도 있었기에 아침에 꾸물대기 일쑤였던 것도 한 몫했으리라.


아버지들은 다들 같은 회사에 생산직이었고, 사는 아파트의 평수도 같았기에 동네의 친구들은 잘살고 못 사는 구분이 거의 없었다. 명절이 되어 회사에서 받아온 사은품도 같았으며, 혹 야근을 하고 일찍 퇴근한 옆집에서 보너스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엄마도 아버지가 빨리 퇴근하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굳이 비교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회사의 간부 사택이라고 불리는 곳에 사는 몇 명 안 되는 반 친구들이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와는 딴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경기도 사투리라는 뜻의 경사를 썼다.


어느 날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같은 반에 다니는 명식이를 만났다. 그는 평소 말도 별로 없었고, 나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내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가 왜 나를 지목했는지는 지금도 의아하다. 명식이는 어쩌면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고, 그가 보기에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불러 세우곤 자기가 오랫동안 봐 둔 게 있는데 같이 가보자며 나를 데리고 갔다. 자전거였다. 붉은 벽돌 담벼락에 세워진 자전거는 손잡이 부분과 바큇살에 약간의 녹이 슬어 있는 회색의 자전거였다.


명식이는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이 자전거, 주인이 없는 거 같아."

"그래도 주인은 있겠지."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여기에 서 있데. 비 오는 날에도 그렇고, 주인이 있다면 이렇게 밖에 두겠나? 자물쇠도 채워놓지 않았고. 주인이 있다면 그렇게 비를 맞게 이렇게 뒀겠나? 녹이 슬어버리는데."

"근데?"

"이거 팔자."

"아무리 그래도 이거 네 거 아니잖아."

"내 꺼도 아니지만, 어차피 주인도 없으니 그렇게 영 못쓰게 두는 것보다는 안 좋나?"

그럴듯했다.


"근데 이걸 누가 사나? 새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팔기 쉽지."

맞네. 만약 새 거라면 팔기에도 아깝고 그걸 팔 필요가 없지 않나.


"어디 가서 이걸 팔려고?"

"저기에 팔자."

그는 손 끝으로 동네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고물상을 가리킨다. 고물상은 대충 가림막으로 둘러져 벽을 이루고 있고, 그곳엔 온갖 잡동사니들이 수북했다. 나는 한 번도 그 고물상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고물상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거기에 가 볼 일도 없었다.

"그럼 명식이 네가 팔지 왜 나한테 말하는데?"

"나는 안된다. 저기 사장이 내 얼굴 알아서 나는 안된다."


내가 왜 동의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저렇게 버려지는 자전거보다는 다른 주인을 찾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고, 또 약간의 이익도 생긴다는 계산이었을까? 그렇게 자전거에 손을 댔다. 명식이는 고물상으로 들어가는 코너에서 내게 자전거를 건넨다. 본인은 주인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여기서 기다릴게라며 몸을 숨긴다. 나 혼자 자전거를 끌고 고물상에 들어간다.


 "이거, 니 꺼가?" 고물상 주인 물건들을 정리하다 말고 자전거 끌고 오는 나를 보더니 대뜸 하는 질문이다. 전혀 생각 밖의 질문이었다. 그냥 자전거 팔러 왔다고 말하려 했는데, 주인은 왜 왔느냐가 아니라 내 소유물인지 먼저 확인을 한다.

"네." 이 말을 하는 순간, 번복의 가능성은 어려워져 버렸다. 내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왔고, 나도 모르게 '네'라고 말하고 말았다. 순간 머리가 아득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하얘졌다. 그렇다고 지금 물릴 수도 없다. 만약 '아니'라고 말해도 이상하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확신에 차서 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젠 물릴 수도 없다. 연기라도 해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일단 뱉어버린 거짓말은 다음의 질문에도 거짓말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짜 니 꺼가?" 주인은 눈에 힘주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나는 외면하듯 자전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예에." 아, 젠장. 다리가 얼마나 떨렸던지, 심장은 또 얼마나 쿵덕거리던지. 이젠 정말 돌이킬 수도 없다. 내가 얼마나 뻔뻔스러울 수 있는지에 스스로 더 놀라며 제발 더 이상 주인이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길 바랐다.


자전거를 살피던 주인은 잠시 주저하는 듯 보였다. 처음 자전거를 끌고 들어갈 때의 예상 질문은 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간부 사택 쪽으로 손짓을 할 참이었고, 언제 샀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를 궁리하던 내게 주인의 '니꺼가?'라는 첫마디에서 모든 게 엉키고, 두근거림이었다.


"아직 쓸만한데?" 주인은 금고에서 약간의 지폐와 타래엿을 챙겨준다. 무기력하게 그 대가?를 받고 고물상을 나선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걷기도 힘든데 숨어있던 명식이는 나를 보자 뛰어온다.

"와, 니 잘한데이. 주인이 아무 말 없더나?"


우린 엿을 입에 물고 집으로 걸어온다. 엿이 달기는커녕 기분이 정말 엿같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반문을 해봐도 난 딱히 그에 합당한 타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애들은 착하고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단다. 물론 그런 애들도 있겠지. 이미 나는 내 안의 철면피를 봤다. 가증스러울 만큼 과감한 뻔뻔함을.


악마의 얼굴과 천사의 얼굴이 같은 게 아니라, 이 속에 악마와 천사가 있을 뿐이다. 이걸 인정하고 떳떳함으로 가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고물상 집 아들이 우리 학교에 같이 다니는 철이었단다. 온 동네를 쏘다니던 나는 유독 그 고물상 근처는 피하고 다녔다. 철이가 은빛 자전거를 타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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