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Sep 23. 2022

묵행

궁극은 상태에 대한 형용

다리에 생긴 상처에 대해 물었다. 건강하던 사람에게 이런 피부병 같은 증상이 나타난 것은 뭐가 잘못된 걸까? 그걸 질병으로 봐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환부는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다리를 걷어 올러 한번 쓱 보더니 심하게 아프거나 가렵지는 않단다. 수면 중 본인도 모르게 긁기도 하는지 아침에 한 번씩 진물이나 딱지가 붙어있더라고. 허벅지와 무릎 주변으로 한둘 상처가 돋다 치유되다를 반복하여 일순 깨끗해지더니, 요즘은 무릎 아래쪽 정강이에 종기 같은 상처가 생기더군. 외상이나 타박상이 없는데도 이유 없이 나타난다는 것은 내 내부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며.


지금까지 살면서 배출되지 못하고 남은 잉여의 노폐물들이 엉겨 내부에 습담을 형성하고 있다가 순환되면서 배변이나 땀으로 나가기도 하고, 피부 표면으로 나타나기도 하지. 진행 과정상 상처 부위가 점점 말단 쪽으로 나타나는 게 호전되어가는 정황으로 볼 수 있지. 한 번은 발바닥에서 때가 엄청 벗겨지면서 무슨 모래알 같은 게 두 달이나 계속 나오더니 깨끗해졌지. 참 신기한 증상들이야.


알 수 없는 몸의 변화다. 몸에서 모래알이 나오기도 하다니. 그렇게 나름 맑게 순환을 시킨다고 해도 몸의 어딘가에 끼어있는 찌꺼기가 벗겨져 나오면서 그렇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아마도 어려서 엄격한 부친에 대한 억눌림이 오래 묵혀있다 나오는 게 아닐까 추측한다고.


그의 삶은 단순하다. 따로 계모임 같은 것도 없고, 하다못해 동창회를 나가지도 않는단다. 수영 같은 단체 운동을 해도 강습을 받고 자기 연습을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동호회 가입도 없다. 가끔 지인들을 잠시 만날 뿐. 심심할 것 같은 그의 생활이 무의미할 만큼 건조하게 느껴졌다. 고립되고 외롭지 않으냐고 하니, 일부러 왕래를 차단하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보통 모여 얘기하는 관심사가 본인에겐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그렇단다. 돈, 명예, 성공 등등이 자랑질처럼 그저 그런 듯 무심해져 재미가 없을 뿐이라고.


스스로가 열심인 건 알겠는데 뭘 추구하며 살까? 그런데 그의 답이 좀 그렇다. 이것 말고 또 뭐가 있냐는 식이다. 큰 어려움이나 걱정 없으면 됐지라는 식이다.


어찌할 것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음받아들이고 수용함에 대한 얘기들이 이어진다. 나도 한때는 많은 돈을 벌고 싶었지. 그런데 돈이란 게 수익이 많은 날엔 꼭 돈 쓸 일도 많이 생기더군. 반대로 해야 할 일들이 생겼는데 돈이 궁해 쪼들리고 쫓기는 때에는 큰 일 날 것 같아 잠을 설치기는 해도 예상치 않은 곳에서 물이 흐르듯 돈이 생기더라고.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냐.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해도.


엮기고 얽힌 돈의 흐름은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무리하게 진행하여도 잘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부의 축적을 위해 애쓴 만큼 내 몸도 상하더라고. 자본의 여유가 잠시 위로가 되지만 쓸려고 모인 돈이려니 생각하니 미련을 덜 갖게 되더라고. 필요한 만큼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더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해도 그걸로는 나를 채워주지도 못하는구나 하는 어떤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 어쩌면 부富의 속성은 남들에 대한 과시라는 말이 맞는 듯 해.


이렇게 사는 삶의 목표 같은 게 있을지 물었다. 그는 그저 편안하고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단다. 대상 없이 상대 없이 자신에 자유로운. 흔히 생의 목표라고 하면 어떤 경지에 이른다거나 가시적 업적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지. 그래야 뭘 이룬 것 같잖아. 그러나 목표라는 게 실제로 고정된 무엇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의 유지가 아닐까 싶네. 사랑도 형용사이지 않을까?자유니 평화니 하는 것도 추상명사로 분류시켜 의미를 박제화하지 말고 형용하는 상태라고 보는 게 옳아.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뭘 이루는 것도 의미 있겠으나, 편한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란다.


감이 잘 안 왔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별스러울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심오할 것 같기도 하다. 뭐가 있긴 한가?




작가의 이전글 팽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