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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05. 2022

바다 멍

결을 남기다

바닷가 해안선. 고운 모래로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곳을 지나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또 다른 해안에는 까만 몽돌이 지천인 바다가 나온다. 몽돌 해안도 어느 곳엔 손톱만 한 잔돌들이 한없이 펼쳐진 곳이 있고, 다른 몽돌 해안에는 어린애 주먹만 한 조약돌만 쭉 깔린 몽돌 바다도 있다. 


백사장 바닷가는 파도가 높은 날이나 바람이 많이 분 다음 날에 가보면 해안선을 따라 파도의 흔적이 남긴 물결 자국들이 등고선처럼 겹겹이다. 그런 날의 백사장엔 모래 위에 바람의 흔적을 남긴다. 마치 사막 모래의 바람결처럼. 


산에서도 그런 물결이다. 맑은 냇물이 흐르는 바위 위로, 물 고인 선녀탕의 바닥에도. 그런 결 모양은 나무의 무늬결에도 보인다. 나무의 나이테를 비스듬히 빚어 만든 탁자를 보면 산속 맑은 물결이 나무에도 결을 남긴 것 같다. 세상의 파동의 모양은 다 비슷한가 보다. 물결 문양이다.


고등어를 먹다가도 그런 결을 떠올린다. 볕이 드리운 수영장 바닥의 물결도 그렇고, 고등어의 등에 새겨진 푸른 물결도 그렇다. 고등어구이를 먹다 보면 고등어 살도 켜켜이 결이 난다. 그런 고등어는 안팎이 모두 물결인 것 같다. 그런 음식이 내 몸에도 물결을 쌓는다.


잔 몽돌 해안은 재밌다. 파도가 밀려오면 작아서 가벼운 몽돌들은 물 빠진 해안선에서 눈치 보다가 파도가 도착하기 직전에 먼저 다가오는 포말과 함께 튀어 오른다. 살아있는 것 같다.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신발 젖지 않으려 뛰는 애들처럼 육지 쪽으로 다투듯이 튀어 오른다. 파도는 대여섯 번의 잔파를 치다 한 번씩  높은 물결을 일으키면 해 질 녘 술래잡기 놀이 마냥 까만 잔돌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튀어 오른다. 그렇게 물에 잠기지 않으려 뛰어도 이내 파도는 잔돌들을 덮친다. 바닷물에 밀리다 끝내 잠긴 잘잘한 몽돌들은 썰물 되어 쓸려 내려가는 바닷물 따라 같이 쓸려 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뒹굴고 튀면서 둥글어지다 잘아진다. 

 

나는 큰 몽돌 해안을 더 좋아한다. 무게가 있는 조약돌은 파도에 반응이 없지만, 가끔 센 파도에 살짝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만 움직인다. 몽돌 해안은 그냥 눈으로 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해안가로 가까이 가서 누워야 한다. 누워보면 생각보다 돌이 배기진 않는다. 누워보면 서서 듣는 파도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있다. 파도가 밀려와 몽돌에 부딪치는 소리도 좋지만, 파도가 남긴 포말이 몽돌 속에서 터진다. 거품이 뽁뽀록 하고 톡톡 터진다. 그 소리가 참 맑고 싱그럽다. 듣던 소리를 보려 돌아누우면 저 멀리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잘 보면 수평선이 내가 누운 몸보다 위에 떠있다. 곧 멍해진다. 


포말 터지는 소리를 듣다가 더 음미하려 눈 감으면 실수하는 거다. 무슨 실수냐고? 나도 몇 번을 그렇게 당했다. 잠시 소리를 더 음미하고 감상하려고 눈을 감아보라. 해보면 안다. 소리에 집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주변이 서늘해진다. 분명 잠깐 눈을 감고 있었는 듯한데 어느새 감은 눈과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진다. 뭔가 싶어 눈을 떠보면 이미 해가 저편으로 가고 있다. 정말 잠깐 소리 듣는다고 눈을 감았는데 해가 진다. 그리고 집으로 간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면 그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울 속엔 안경 흔적만 하얗게 동그랗고, 얼굴이 가맣게 그을린 친숙한 이가 나타나리라. 바다 망중한의 오점이다. 그렇게 바다에 파도에 햇살에 취한 소리결이 얼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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