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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06. 2022

공간 모호

어두운 현기증

캄캄한 방. 암실 같은 방에 홀로 앉아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낮인지 저녁인지 시간을 알 수도 없지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몸이 묶인 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왔는지도 분명치 않다. 다만 뭔가 멍한 상태에서 최근의 날들이 꿈꾸는 듯이 몽환적이라 확실한 건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더욱 깊이 빠져든다.


방안엔 조그만 틈새의 불빛도 없어 가 어떤 자세로 있는지 분명치 않다. 지독히 어둡다. 눈을 감으나 뜨나 보이는 게 어둠뿐이니, 두리번거리고 눈을 깜빡여도 의미가 없다. 보이는 게 똑같다. 그냥 어둠뿐이다. 손을 움직여도 동작을 볼 수 없으니 내 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할 뿐이지 정말 움직는지, 얼마나 움직였는지 모르겠 다만 움직인다는 느낌만 있다.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는  없으니 고개를 돌림을 알 뿐이다. 심호흡을 하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살아는 있구나.


공간 전체가 어두움이라서 어쩌면 공중에 떠 있는 자세인데도 앉아있다고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간과 내가 통째로 어둠 속의 한 덩어리다. 살아 있고, 나라는 존재가 여기 있을 뿐이다. 소리조차 없어 적막하다. 빛과 소리가 없다는 것은 내가 '나'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나보다. 아무런 자극이 없으니 감각할 게 없다. 어디쯤에 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주의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만 순간순간 인식되는 존재인가.


만약 평소에도 매일 발생하는 자극이 너무 익숙해서 무뎌지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이 암흑 공간에서의 느낌처럼 내 존재를 어떻게 알까? 이게 문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자극은 무의미하다. 몸이 마비되어 찔러도 움찔하지 않는 상태처럼. 이게 익숙함과 어떻게 다느냔 말이다. 늘 버릇처럼 하는 행동들이 기실 매번 다른 상황과  환경인데도 습관처럼 반복한다면 그걸 익숙하다고 할 순 있어도 나를 인식하기는 힘들다.


느낄 수 없다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 아침 거미줄에 나뭇잎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나뭇잎이 뱅글뱅글 돈다. 도는 속도가 엄청나다. 그렇게 한 방향으로 계속 도는데도 거미줄은 꼬이지 않는지 낙엽은  여전히 매달려 있다. 너무 빨리 돌아서 도는 방향이 시계 방향인지 반시계 방향인지 구분이 안된다. 어쩌면 도는 게 아니라 좌우 무한 반복중 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나뭇잎은 계속 앞뒷면을 번갈아가며 눈을 어지럽힌다. 현기증이 난다. 아니 내가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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