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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23. 2022

움직이는 별

그건 밖이 아니라 속에 있나

방금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와 땀 식힐 겸 옥상에 올랐다. 바다로는 수평선에 드문드문 고깃배가 떠있고, 땅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낮에 지나온 길을 일정한 간격으로 비춘다. 불빛이 멀어 내 그림자조차 만들지 못하는 거리에서 길의 여부만 알려준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남쪽 어느 외딴섬의 민박집 옥상. 그 집 옥상에 있는 평상에 누웠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맞물려 여름휴가도 없이 지내다 얼마 전 알림판에 떠난다고 써놓고 휑하니 왔다. 가능한 한 조용한 곳을 찾아 섬으로. 단 이삼일 정도라도 짬을 내야 할 것 같았다. 예전의 머묾 병이 도지기 전에 택한 일탈이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해야 할 계획도 없다. 그저 쉼표 같은 시간 떼놓기를 하고 싶었다. 폰까지 두고 오려했으나 그건 좀 무책임할 것 같아 챙겼다.


바다 바람은 사납게 불고 차갑게 이마를 스치지만 춥지는 않다. 누워서 밤하늘을 본다. 흐릿하게 옅은 구름막이 간간이 드물게 지나간다. 주위가 이렇게 어두운데도 별은 멀다. 여름밤 별처럼 손에 잡힐 듯 쏟아진다는 느낌보다는 거리를 두고 조그맣게 멀다. 누운 내 눈 정면에 어느 별을 하나 골라 바라본다. 작은 별빛을 이렇게 오래 쳐다보기는 처음이다.


어떤 형은 내게 '이렇게 살다 가는 거. 뭐 특별한 게 있나 이렇게 사는 게 특별한 거지.'라며 너무 애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또 다른 형은 '중생의 삶이 그렇지 뭐. 그건 그대로 두고, 얽매이지 않는 생을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별빛은 한 참을 바라봐도 눈부시진 않다. 점점 그 별만 남고, 주변의 별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하나의 별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보고 있는 그 별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인다. 사선으로 대각선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일정한 방향 없이 움직인다. 눈에 힘을 꽉 주고 쳐다봐도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마치 졸다가 그려진 공책의 연필 자국처럼, 물고기 걸린 낚시찌처럼.


눈을 잠시 감았다 다시 떠본다. 여러 별들과 함께 그 별은 여전하다. 다시 별보기를 해본다. 잠시 후 다른 별들이 사라지면서 그 별만 남았다. 그런데  또다시 그 별이 움직인다. 광년의 세월을 두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별이 이렇게 금방 움직일 수는 없다고 대뇌어도 별은 움직인다.


최근 절대적 어떤 무엇이나 대단한 뭔가가 존재한다는 착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에도 마음속엔 아직 답답함이 있다. 존재와 인식의 문제처럼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등의 유무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空이란 뜻인가? '비어있다'라고 한다면 이건 있는 것인가 빈 것인가? 어있음은 언제든 채워질 수 있고, 무엇이든 담길 수 있으나 지금은 남겨진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열린 채로. 단지 그 변화에 의도나 개입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맞물린 숱한 조건들이 얽혀있어 우연처럼 보일 뿐인.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은 아무 거리낌 없이 모양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물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궤변인가? 아니 물도 바뀐다. 얼음으로 수증기로. 조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말들이 어렵다.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한다는 말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말이다. 보이는 데로 그림을 그려라고 해도 자기 생각대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표현 방법이 서툴기도 하다. 아무리 잘 그리고 하다못해 사진으로 찍어도 보이는 그대로와는 차이가 있다. 그냥 보면 될 일을 표현하려니 한계가 있고, 보이는 대로와 똑같기는 불가능하다. 보면 될 단순 명료함에 꾸밈과 수사가 너무 많다. 잘 모른다는 말이겠지 싶다. 서서히 추위가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어느 쪽이든 움직이는 게 있는 거다. 이든 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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