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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25. 2022

응답이 남겨진 시간

엄마라고 부르면 응! 왜?

며칠 전 엄마 집에 갔을 때 엄마는 영정 사진을 찍었다며 보여준다. 주민센터에서 무료 촬영을 해준다고 해서 아파트의 같은 동의 할머니 몇 분과 같이 갔다 왔는데 이렇게 현상해서 액자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사진이 맘에 안 든다고 포토샵 처리해서 다시 찍어달라고 매달렸단다. 어쩔 수 없이 동행한 사람들 모두 재촬영을 했고, 그 참에 엄마도 원치 않게 다시 찍었다. 주름살 지우고 온화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처리된 재촬영 사진을 엄마는 다른 사람 같아서 싫다며 원래의 사진만 따로 둔다. 그냥 이렇게 할래.


최근엔 염색도 않는다. 얼굴은 쭈글 한데 머리칼만 새까맣게 젊은 게 말이 되냐며. 염색하고 나면 눈도 더 침침해지는 것 같고, 그냥 같이 늙어가는 게 좋단다. 예전 물들인 머리칼 끝부분이 연갈색 물 빠진 모습으로 달려있다.


재촬영을 원한 이도 이해는 간다. 떠나갈 이가 남겨질 사람들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예쁜 얼굴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리라. 영정 사진을 받아놓고 엄마는 마음이 좀 편한가 보다. 20년 전 암으로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돌이킬 수 없는 병임을 뻔히 알고 있었어도 막상 상을 당해서는 당황해서 그 흔한 영정 사진 하나 미리 마련해 놓지 못했다. 그때의 허둥댐을 다시 본인으로 만들기 싫었으리라. 급박한 상황이라 적당한 사진을 찾지 못하다 예전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의 일부에서 아버지 얼굴을 확대해서 급조하여 영정으로 올렸으니.


과연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게 남겨질지 궁금하다. 아니지 남겨질 모습이 어떨지는 모를 뿐 아니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 뭘 남기고 싶어 할까? 그러나 뭘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나 뭔가 남아야 한다는 생각도 부질없는 짐처럼 무겁다. 평생을 여기서 살았으면 왔다간 어떤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접는다. 남겨서 뭘 할 건가? 뭘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욕심 같다. 나는 아마 영정사진도 안 찍을지 모르겠다. 여기의 글도 그냥 지금의 내 심정을 쓰고 싶어 쓸 뿐이다.


보여준 사진을 침대 밑에 밀어 넣으면서 엄마는 한 마디 더 한다. 오늘은 친구랑 병원 갔단다. 관절염 말고는 아픈 데가 딱히 없는데 왜 병원에 갔는지 어디가 안 좋은지 물으보려다 참았다. 무슨 말을 또 하려나하고 눈만 쳐다본다. 요즘 많이들 하고 있더라면서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왔단다. 그냥 누워 숨만 쉬고 있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않냐며. 그렇게 누워 의식도 가물하게 몇 년을 보내고 간 이도 주변에 있는데 그에게나 가족이나 다들 힘들어하지 않겠냐며.


내가 의식 없이 쓰러지거든 그냥 보내란다. 콧줄 꽂거나 소생술 런 거는 하지 말란다. 그냥 집에서 자는 잠에 갔으면 제일 좋겠다고 그 전에도 몇 번이나 언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끈하며 아직은 한참 후의 얘기 아니냐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엄마, 아무리 갈 때 가더라도 내게 '간다'는 인사는 하고 가야지라고 하면, 엄마는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그래도 가야지'한다.


엄마 눈을 빤히 본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있는 지금의 모습을 볼까? 한참을 보고 있으니 엄마는 왜 얼굴에 뭐 묻었냐고 마른 손으로 얼굴을 훔친다. 아니, 그냥. 그리고 마치 무슨 일 있는 양 크게 불러본다. "엄마", "응", "엄마", "왜?" 부르면 내 앞에서 1초의 기다림 없이 바로 대답을 하는 엄마를 얼마나 볼까?

몇 년 후 이 글을 보고 나는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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