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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03. 2022

어느 대부업자의 눈물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은

한밤의 갑작스러운 문자 한 통. 잠결이라 새벽에서야 내용을 확인했다.

'형님, 한 잔 하고 집에 가다 문득 생각나서 톡 했습니다. 보고 싶네요.'


한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같이 뛰놀며 지내던 사이였다.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삶을 이어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린 별 걱정 없이 자랐다. 그의 부친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남겨진 두 아들을 홀어머니는 날품을 팔면서 억척스레 키웠다. 장성한 아들들도 비록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성실과 신용으로 장사를 해오면서 큰 성공은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은 영위했다. 


장사라는 게 싸게 물건을 떼와서 필요로 하는 곳에 물건을 넘겨 노동력과 차액으로 이윤을 남기는 일이지만, 간혹 물건을 넘겨받은 쪽에서 물건값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망하거나 혹은 악의적으로 폐업을 하는 통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손해 보는 일도 잦았다.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굽혀가며 새로운 업체와의 거래를 터는 일도 힘들지만, 기존 업체에서의 거래 대금이 제 때 입금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는 일들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럴 땐 밀린 대금을 두고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아닌 갑질의 자세에 넌더리가 나기도 했다. 더구나 그렇게 망하거나 폐업으로 인해 물건값을 고스란히 날려버리는 일을 크게 당하고 나면 손실도 손실이지만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했다. 내일이라도 갚을 듯이 언질을 해놓고는 그렇게 일을 처리해 버리기도 했으니.


우여곡절 끝에 성실함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한 덕에 마침내 지역 내 탑 쓰리 안에 들 정도로 업체는 성장을 했고, 제법 모인 자본으로 그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한 번씩 터지는 사고에 조금이라도 손실보전을 위해 자본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대금 납입을 미루는 업체에게 담보물을 잡고 급전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그러고 나서야 어처구니없는 손해에서 거의 벗어났다. 물건을 납품받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차일피일 미루던 업체는 금전적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빌린 금액에 대한 담보물이 걸려있어 최대한 물건값을 돌려주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담보물을 날리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그가 자구책으로 시작한 금융업 아닌 대출 형태의 업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됐다.


대부업이 제1 금융권보다 이자가 더 높지만 급전이 필요하거나 대출금액이 커서 은행권에서 대출받기 힘든 경우에 나름 유용하다고 볼 수 있지만, 대출 기간을 길게 잡으면 곤란하다. 그는 본인의 업은 정식 등록업체이며 합법적 범위 내에서 일을 한다며 나름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에겐 나름 원칙이 있었는데, 첫 째는 사람 개인을 대상으로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 째는 담보물만 확보되면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의 요청엔 당연히 첫 째의 원칙을 들어 무마하고, 자금 보전을 위한 두 번째의 기준으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불법 채권추심을 행하는 사채업자들은 대부분 미등록 업체들이고 그들에게 걸리면 정말 피도 눈물도 없으며, 본인은 지극히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대부업을 한다고 한다. 급전이 필요한데 금융기관에서는 받아들여주지 않아 밀려난 사람들에게 담보만 충분하다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한 번은 그가 내게 ' 형님,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곧 힘이고 갑입니다.'라며 이 사업을 자기 아들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대물림을 해주고 싶다고까지 했다. 뭔가 돈의 위력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는 그렇게 흔히 말하는 사금융 세계의 대부업자가 되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어려서 같이 놀던 때에서 몇십 년이 지나서였다. 어느 날 문득 한의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뒷목에 지속적으로 돋는 뾰루지로 피부과 치료를 받고, 소염제를 먹고, 마사지를 받아도 좀체 호전이 안된다고 해서 진료를 받으러 왔다.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종기처럼 뒷목에 화농성 염증의 뾰루지가 올라와 고생을 했다. 


심간의 풍화風火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뜨겁고 더운 기운이 위로 치솟아 증상이 가라앉지 않고 재발하는 양상이었다. 치료도 치료지만 운동을 권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내게 권위의식 없이 편하게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동안 갑질에 시달려온 얘기를 하기도 하고, 최근의 피부병으로 고생하면서 겪은 의사들에 의한 또 다른 갑질이 느껴졌었단다. 질문을 해도 응답이 별로 없고, 그냥 약 먹으면서 보자는 말 이상은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 치료를 받으며 증상이 거의 호전되었을 무렵, 같이 저녁 겸 반주를 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일련의 지나온 일들을 얘기하면서 나는 그에서 그렇게 돈을 벌어서 뭘 할 건지를 물었다. 그는 돈은 일단 많으면 좋지 않느냐는 식으로 얘기하길래, 그래서 많은 돈을 모았다고 치고 그다음엔 뭘 할 것인지를 다시 물었다. 그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었다면서 생각해보겠단다.


나중 다시 만나 그는 내게 그럼 형님은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 아니 정작 본인은 답을 않고, 내게 묻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말이 그의 예시가 되어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답했다. 내가 원하는 건 자유. 시공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현재 이 모든 상황에서 거리낌이 없는 자유라고 답했다. 그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으리라. 돈이나 명예 또는 권력 같은 류의 답을 짐작했으리라. 나는 덧붙여 아직은 완전한 자유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여하튼 그는 그렇게 대부업으로 전환하여 나름 그 업계에서 믿을만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최소한 악덕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물론 그는 합법적 방법과 이율을 제시하고, 그 대가로 답보를 저당 잡아 꽤 큰 금액의 대출건을 성사시켰다.


일반적 인식으로 사금융이니 사채업이니 깎아내리듯 말을 하지만, 사실 제1 금융권이라 해도 돈으로 장사를 하는 모양은 비슷하다. 이자가 약간 싸고, 은행이라는 뭔가 깔끔하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져서 그렇지, 예대마진으로 이윤을 남기고 카드론 등으로 돈 장사를 하고 있으니. 단지 그런 제도권 금융에서도 신용 등급이 낮은 이들이 결국 내몰린 상황에서의 사채는 합법적이라곤 하지만 고금리를 감수해야 하고, 당장의 급한 자금의 융통을 바라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뿐이지만, 그 나름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수긍을 할 만하다. 


동생은 담보물권을 잡은 상태에서의 대출이기에 비록 환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더구나 이번의 대출건은 그 사업체가 나름 유지도 잘 되고 전망도 괜찮았는데 뭔가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발생한 상황이라 그는 별 의심 없이 대출을 한 것이다. 일이란 게 한 번 꼬이면 연쇄적으로 꼬여 엉키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과감하게 멈추거나 잘라내거나 감당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도 말이 쉽지 금전적 문제는 물론이요 정신적 압박은 상상 이상이리라.


그 사업채는 빌린 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는지, 지속되는 자금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사장이 자살을 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돈이 가진 전형적인 비정함이다. 대부업에 대한 회의가 생길 만도 한 일이지 않나. 그는 얼마간 힘들었으리라. 어떤 도구든 그건 감정이 없다.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쓰냐의 문제일 뿐.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그 본성이 따뜻함보다는 무자비함이라고 느껴진다.


새벽의 문자톡에 답을 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대상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보다

가슴에 더 뜨거움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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