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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22. 2022

보물지도

나는 어디에 있나?

 다섯 살 된 어린 딸의 잦은 입원으로 젊은 부모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6개월 전 어느 날 밤 딸의 갑작스런 고열과 경기驚氣로 놀란 부모는 응급실을 찾았다. 열성 경련으로 의식까지 잃었고 여러 검사를 했으나 특별한 원인은 없었다. 다음날 딸은 차츰 의식을 되찾았으나 미열이 잡히지 않아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했다. 그 후로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온 열 경기로 응급실을 통해 2-3일간 입퇴원을 반복했다. 병원으로부터 열성 경련 양상을 보이는 상세불명열이 진단명을 들었단다.     


 걱정스러워하는 부모와 달리 여자애는 야위었지만, 아주 똑똑하고 예민하고 고집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까만 눈동자의 반짝임이 맑았다. 맥脈을 보니 약하고 빨랐다. 기운이 약해 힘이 없으면서도 뭔가 욕구나 불만 등의 감정이 흥분해 있을 때 나타나는 맥상이었다.


6개월 전 열났을 때의 상황을 물어보니 평소와 다름없었단다. 다만 3살 터울의 동생과 관련 있지 않을까 했다. 처음 동생이 태어나서는 딸은 마치 자기가 어른인 양 동생을 그렇게 좋아했단다. 그러다 차츰 시기와 질투가 늘더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토라지기도 했었단다. 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열 경기까지 하는 통에 많이 놀랐었단다. 몸의 기운을 돋우고 안심시키는 약으로 처방하여 치료하면 좋을 듯했다, 동시에 딸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부탁했다. 자주 안아주라고. 결국 관심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 달 후 부모와 딸이 왔다. 지금껏 괜찮다가 지난주에 열이 나서 간만에 응급실을 가게 되어 혹시나 하는 불안에 다시 왔단다. 낮에도 잘 놀고 밥도 잘 먹었는데 또 증상이 있었단다. 부모는 하도 응급실을 자주 가서 이젠 열만 나도 놀란다. 퇴원하면 힘들었을 딸을 위해 좋아하는 것은 뭐든 사 주려고 했단다.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이 왔다. 이번에도 부모에게 부탁을 했다. 낮 동안 별 일 없이 잘 지냈으면 밤에 열이 나더라도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집에서 쉬게 하면서 지켜보는 게 더 우선인 것 같다고. “부모가 당황하는 모습에 딸이 더 놀랄 수도 있고, 어쩌면 부모의 불안을 딸이..”하고 말을 하다 입을 닫았다. 누군가 갑자기 내 팔을 꼬집고 때리고 울면서 뛰쳐나간다. “미워”    


 그렇게 치료한 지 3개월쯤 되어 이제 괜찮은지 확인 차 왔노라고 부모와 딸은 진료실에 앉았다. 약간 살이 오른 모습의 딸은 여전히 새초롬해 보이지만 뭔가 입이 들썩거린다. 나가는 길에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이거, 보물지도예요.” 몇 번을 지웠다 그리기를 반복했던지 연필 자국 흔적이 남아있었다.

“보물 지도면 귀한 건데 왜 부모님께 드리지 않고 내게 주는데?”

“엄마 아빠는 직장 다녀서 바빠 못 가요.”

“넌 그곳에 가봤고”

“참나, 내가 가서 보물을 가져왔으면 그건 벌써 보물지도가 아니죠.”

아 몸이 많이 나아졌구나 싶었다. 지도를 살피며 물었다.

“지도는 알겠는데 나는 어디에 있지?”

“네에? 지금 내 앞에 있잖아요.” 하고 획 나간다. 물을 걸 물어야지 하는 말투다.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익숙한 산인데 산그늘 짙고, 예정 없던 비까지 내려 서둘러 지름길 간다고 등산로 아닌 길을 재촉하다 길을 잃었다. 내려가야 버스를 타는데 자꾸만 오르막이다.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때는 촉박한 시간에 쫓겨 순간 지금의 내 위치를 잃어버린 때다.

 이제 손엔 보물지도가 있고, 보물만 찾으면 된다. 근데 난 어디에 있나? 지도의 어디쯤?


하늘이시여 저 보물을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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