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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26. 2022

깃발-바람-마음

피부의 심층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논쟁이다.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다는 둥, 바람이 불고 있어서 그렇다는 둥,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는 둥 말이 많다. 뭐가 맞냐고 묻는다면 그저 질문자의 얼굴을 멍하니 볼뿐이다. 그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이다. 왜냐면 모두가 답이니까. 현상이냐 작용이냐 인식이냐의 문제일 뿐. 어디에 관점을 두고 있는지가 기준이다.


 어떤 사건이나 증상에 대해서도 이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드러난 사실을 기준으로 단순히 나타난 상태나 상황에 대해 바라보는 1차원적인 명료함으로 볼 수도 있고, 이 상황이 있게 된 연유를 찾아 인과관계 따져보고 시간적 연계성을 궁구하여 그 원인에 더 중점을 두는 관점도 있다. 여기까지는 객관성으로 볼 수 있고, 학문이나 과학의 범위에 속한다고 본다면, 이런 대상과 작용이 나의 주관적 받아들임인 인식의 관점으로 보면 또 다른 시각이다.      


 흔히 피부병의 경우에 피부병은 피부 자체가 정상이 아닌 상태이므로 '피부가 잘못됐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니 피부의 염증 제거와 피부 재생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된다면 단순 피부만의 문제가 아닌 뭔가 다른 원인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 피부가 인체를 감싸고 있는 조직이라면, 인체 내부의 어떤 부조화에 따른 결과물로 인해 피부병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피부병은 내부의 어떤 원인으로 인해 '피부에 나타난' 피부병이다. 몸에 습기가 많거나 열이 많거나 음식 섭취 등의 내부적 순환 장애로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다. 흔히 구규九竅라는 것이 있는데 눈, 코, 귀, 입, 전후음 등의 외부에 드러난 구멍들이다. 그러나 몸의 공규孔竅가 어찌 이런 것 들 뿐이겠나. 내부 장부에도 많은 공규들이 있어    장부들끼리 서로 통하기도 하지만, 내부 조직들은 외부의 피부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안팎으로도 소통을 하면서 동시에 피부 전체가 또 다른 숨구멍이 된다. 우리 몸은 숨구멍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온 몸이 같이 숨을 쉰다. 그러니 내부적 순환장애로 담음 같은 찌꺼기가 고이고, 습담으로 쌓여 있다가 흘러넘치면 점점 외부로 영향을 미쳐 나중에는 피부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경우의 피부병은 단순한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장기 속의 정체된 응결이 피부로 드러난 피부병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이 내부적 장애를 일으킨 주관적 인식에 비견되는 원인은 또 뭔가? 이런 유추를 해본다. 어떤 오래된 습진의 경우다. 이 습진의 원인이 생활의 수고로움을 억지로 참고 깡으로 버티거나 혹은 오랜 과도한 승부욕은 아닐까 생각한다. 승부욕이야 인간 욕망의 한 부분이지만 이 승부욕이 너무 지나치거나 지속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좌절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나만 왜 이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하는 등의 숱한 심리적 흔들림 들이 오래 쌓여 기운을 울체 시켜 오장육부에 습담을 만들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 피부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피부병은 특히나 면역성과 관련된 피부병이라면 피부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순환의 상태를 살펴야 하고, 불안이나 울분, 긴장 같은 칠정까지 염두에 두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치료자의 몫이다.

정작 힘들고 불편한 환자 자신이 스스로 질병을 인식을 해야 하고, 질병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는 개연성에 의한 확신이 생겨나 행동으로 이어져야 온전한 치유로 나아간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땀이다. 내부적 활동이 외부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汗出의 단계를 반복하면 찌꺼기가 빠져나간다. 일시적으로 피부염이 심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과정이고, 배출과 소통이 충분히 원활해져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일어나지 않는 지난한 단계에 이르면 그쯤 되어서야 피부의 괴로움을 벗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깃발이냐 바람이냐의 객체에서, 그걸 바라보는 내부적 인식 주체까지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이어진 변화라. 한열 조습 풍이 모두 그러하고 피부도 그러하겠다. 그래도 깃발은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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