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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Dec 14. 2022

허수아비 영감

시장통에 숨은 짚신 보물

새벽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119 구급대가 도착하고 누군가를 들것으로 옮겨 급히 빠져나간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간 밤에 어떤 젊은이가 찾아왔다느니 원래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이 왔다느니 하는 소문만 무성한 웅성거림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럼 평소같이 거하던 이가  부인이 아니었냐고 묻는 이도 있고, 나이로 봐선 어려 보이기에 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냐는 말도 있었다. 부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그 집에 초등생 남자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애의 성이 허씨인지 또는 그 애의 이름이 허수인지 영감의 성이 허씨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를 허씨 아비 노인 또는 허수아비 영감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그의 생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어떤 이는 이제 그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고, 어떤 이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터놓는다. 갚을 빚이 있는데 그만 가버렸다며 난감해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 집 양반이 허 씨 노인 덕에 천식을 고쳤잖아. 정말 오래 고생했는데 글쎄 허 씨가 돈도 안 받고 무슨 처방을 써주길래 그대로 했더니 조금씩 차도가 있더니 좋아졌지 뭐야. 시눗대 대나무 구하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바깥양반이 그동안 천식으로 고생한 것에 비하면 그건 뭐 식은 죽먹기였지만.


우리 아들 다리도 저 영감 덕에 수술 않고 나아서 지금은 대학 졸업하고 직장도 다니게 됐으니 참 고맙지. 돈도 잘 받지 않아 내복을 한벌 사드렸지만, 만약 아들이 수술했다면 수술비도 수술비지만, 평생 불구로 살 뻔했는데 정말 고맙지.


만성 두통으로 몇십 년간 뇌신을 달고 살다가 허 씨 영감 덕에 약 끊고 지금까지도 괜찮아. 덕분에 좋아졌는데 그만 가셨나 보네. 그 실력이면 좀 번듯하게 한의원 차려놓고 해도 돈 많이 벌었을 텐데 돈벌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나 봐.


나도 어려 만성 축농증으로 엄마 손에 붙들려 그에게 진료를 본 적 있었다. 시장 끝자락에 잘 보이지도 않는 건물에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면, 서너 평의 방안에 영감은 밥상 같은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지 조는지 앉아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그는 방석에 앉아 내 손의 맥을 잡으며 처방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벽 한편엔 8자짜리 약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책장엔 불경과 의서들이 몇 권 꽂혀있는 방이었다. 방 뒤로 쪽문이 연결되어 아마도 뒷방은 숙소 겸 거처를 같이 겸하는 작은 공간이었던가 보다.


약도 필요 없고 무슨 솜으로 말아서 만든 심지처럼 생긴 외용약을 주면서 콧속에 밀어 넣고 있으면 콧물이 많이 나오는데 솜으로 코를 막고 있다가 콧물이 차여 솜이 젖으면 바꾸라고 지시한다. 처음에 한쪽 코를 먼저 하고 뿌리가 빠지면 다른 쪽 코에도 회가 빠질 때까지 반복하면 나을 것이라 일렀다. 왼쪽 콧구멍에서 엄청난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더니 며칠 만에 정말 싯누런 회가 쑥 빠져나왔다. 어린 탓에 솜뭉치로 코를 막고 있는 것도 귀찮고 친구들 놀림도 싫었다. 오른쪽 콧구멍을 또 막을 생각을 하니 자꾸만 꽤가 나서 하다 말았다. 계속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왼쪽 코는 지금까지 괜찮은데, 반대쪽은 아직도 한 번씩 코가 막힌다. 모든 건 그때가 있는 법인데, 잠시의 귀찮음으로 인해 그만둔 치료가 뿌리를 남긴 체 그만둔 게 후회됐다.


영감은 자그마한 키에 흰 수염이 드물게 자란 영판 노인네 같은 인상이었다. 나중에 내가 한의대 입학하고 나서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영감을 찾아갔을 때 그리 반가워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음양에 대한 설명을 한참을 했었지만,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학생이라 대답만 네 네하다 나왔다. 뭔가 깊이가 있는 말이었던 기억인데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그의 삶을 직접 듣은 바 없이 주변에 드문드문 소문이 흩어졌다. 영감의 부친이 작은 약재 건재상을 했기에, 어려서 한약에 익숙했던 영감은 자연스레 부모의 권유로 한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원래 머리를 깎을 생각이었단다. 다른 자제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어른을 잘 챙기는 막내아들을 부친은 유달리 좋아했다. 이제 이 아들이 나서서 집안을 좀 일으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쯤에, 그가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줄 몰랐다가 눈치챈 부모 입장에서는 다 키운 자식을 그렇게 놓칠 수가 없었다. 그를 눌러 앉히는 방법은 서둘러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영감은 원치 않는 결혼에 자식까지 생기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산으로 갈 생각을 접고 일상에 열심이었다.


어느 정도 집안을 일으키고, 자식을 반듯이 키워냈다고 판단한 영감은 어느 날 집을 나섰다. 모은 재산은 처자식들 앞으로 미리 조치를 취하고 거의 몸만 빠져나왔던 것이다. 자식들 다 컸고, 부인 앞으로 먹고 살만큼을 남겨뒀으니, 본인이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하여 영감은 홀연히 떠났다. 굳이 찾지는 말라는 쪽지를 남기고, 옷가지를 넣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출가를 한 것이다.


영감은 집을 나와 미리 봐 둔 절에 의탁하러 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절 주지가 바뀌고 세상이 어수선하여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더 깊은 곳의 다른 절을 찾아 머물렀다. 그때 젊은 처자가 그 절에서 공양주 보살로 있었는데 영감이 눈길을 주면 항상 고개를 돌렸다. 영감 입장에서는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한 행동에 외면하는 보살이 아마도 부끄럼이 많이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보살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닭볏처럼 피부가 붉게 두드러지더니 점점 번져 얼굴까지 퍼지고 있는 피부병이 있었고, 또 하나는 절 근처에 숨겨둔 그녀의 피붙이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영감 본인의 일대사를 이루기 위한 과정의 절 생활이라고 해도 눈에 밟히는 보살의 고苦에 연민의 정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또한 인연 따라갈 뿐이었다.


어느 이른 봄에 영감은 뭔가 환해지는 변화를 느꼈다. 절 밥의 신세를 지속하기도 뭣하고, 이 꺼리를 잃지 않고 맘에 가진다면 속가로 가서도 가능하리란 판단이 섰다. 그리고 그 절에서 자리를 떠나 적당한 곳을 찾아 이곳 장 통에 정착하게 되었다.


영감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살도 그 절을 떠났는데, 어찌 알고 찾았는지 자세한 상황은 몰라도 그 보살이 영감을 찾아왔고, 그 후로 보살은  영감에게 집안일을 대신하고, 영감은 그 보살의 치료와 피붙이의 생활을 돌보게 되었단다. 그러니 정황을 모르는 시장통 사람들에겐 그들이 부부니 부녀니 하는 말들이 떠돌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동거는 시작되었으나, 서로 남녀로서의 끌림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영감이 다시 혼인을 했을 리 만무하지만, 여인도 영감을 잠시 돌봐주는 도우미 역할로 머문다는 게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물론 피부병의 치료가 길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녀도 딱히 몸을 의탁할 곳을 정하지 못하던 터라 의지 삼아 머물렀으리라.


어쨌든 영감 입장에선 생활 영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경제활동이 필요했다. 스님들처럼 탁발을 하거나, 이미 떠나온 처자식에게 손을 내밀거나 빌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장통의 끝자락에 낡고 허름한 건물에 조그맣게 한의원을 열었다. 문 입구에 한의원이라는 표식만 달랑 붙여놓았다. 주변의 건어물 판매점이나 식당을 통과하여 거의 골목 끝에 위치한 그곳은 부러 찾지 않으면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의 자리였다. 영감은 그 정도로만 그렇게 머물렀다.


영감에겐 특이한 관념이 하나 있었다. 낯선 이 시장터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주변의 안면을 트는 사람들이 늘었어도 그들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경조사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사람 관계가 어찌 그런가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은 입을 닫았다. 영감에게 그런 일들은 상부상조를 위한 세속의 인간사일 뿐이었다.


이미 그 자신이 앞서서 처자식을 두고 집을 나오지 않았던가. 속가의 핏줄에도 그리했던 것인데 하물며 타인들이야.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한 가지는 영감은 그들에게 보여주진 않았지만, 영감은 홀로 그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다.


한 번은 내가 갓 면허를 따고 나서 영감에 인사를 간 일이 있었다. 낯 빛은 편안해 보였지만, 몇 년 전의 모습과 달리 영감은 많이 늙어 보였다.


영감은 내게 볏짚 얘기를 한다. 짚은 메주를 매다는 새끼줄이 되기도 하고, 가을의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가 되기도 하고, 소여물 밥이 되기도 한다고. 삶을 사는 이 몸도 그 지푸라기 같다고. 텅 비워 이렇게 살면 뭐가 되든 그건 인연의 일어나고 흩어짐의 다름 아니니, 뭘 하든 너무 애쓰지 말고 집착 말라는 말을 한다. 그건 그렇게 두고 마음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른다. 결혼도 자식도 재산도 그건 연기의 다름 아니니, 제 할 일은 따로 꼭 챙겨두라고 당부한다. 그게 내가 영감을 본 마지막 모습이다.


사이렌의 소란이 지나고 며칠 후. 깔끔하게 차려입은 예의 바른 젊은이가 영감의 거처를 들렀다. 그는 영감의 임종을 지키러 왔다가 일을 모두 끝내고  다시 온 것이었다. 바로 영감의 친자식이었다. 시장 주변 상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나서야 길을 떠났다. 저런 반듯한 자식을 두고 홀로 살다 간 영감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뒷얘기로는 같이 살았던 여인에게 노인의 나머지 유산이 남겨진 듯하다.


그렇게 허수아비 영감은 떠났다.

죽음은 개인적 일대사이면서 또 객관적 일상사다.

그 종말을 내내 끌어안고 사는 이유는  죽음의 도외시가 아닌 살아있는 지금에 더 충실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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