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오늘도 고마웠다.(온전한 내 편)

#여동생 #자매 #온전한 내 편

by 세시반

온전한 내 편


- 온전한 내 편 있어요?


일평생 날 서게 지지고 볶은 이도

일평생 터진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본 이도

일평생 허울뿐인 서열을 꿋꿋이 지켜준 이도


너였다.


무르고 약해져 주름 가득한 껍데기를

문지르고 또 문질러


갈라지지 않게

깨지지 않게

찢기지 않게


조심히

보드랍게

정성스럽게


불어주고

안아주고

기다렸다


속이 단단해질 때까지


- 동생이요, 여동생

- 참 다행이네요.




1. 연년생 여동생이 하나 있다.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밌게 놀다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토라지기 일쑤였다. 워터파크에서 실컷 놀고 집에 오는 길에 싸워서 각자 따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도 했고, 방콕에 가서 알차고 재밌게 놀고는 공항에서 틀어져서 며칠 내내 쌩하기도 했다. 놀 때는 둘도 없는 베스트프렌드였다가 원수 되기 십상인 현실 자매 관계. 함께 나이 들어갈수록 싸우는 횟수도 줄고, 서로를 이해하는 아량도 커졌지만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미친 듯이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를 반복할 것이다. 가족이니까. 주말부부일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삼십 년을 한 방에서 살 비비고 살다가 떨어져 살려니 서로 심심하기도 했을 것이고, 혼자 저녁 먹는 언니가 안쓰럽기도 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통화를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뭐 그리 많은지 그녀와의 수다는 평생 해도 모자랄 것이다.



2. 동생은 싸울 때도 꼭 "언니"라고 부른다. 얄밉다가도 선을 지키는 동생이 기특하곤 했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 동생이 한 번은 홧김에 "야!"라고 했는데 "뭐? 야? 야?" 하면서 내가 아주 난리 난리 쌩난리를 폈단다.(전혀 내 기억에는 없지만;) 언니가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며, 그때 다시는 언니에게 야라고 부르지 않기로 다짐했다나 뭐라나. 어린 게 세상살이를 일찍이 터득했다. 독한 언니 밑에서 자라서일까? 동생은 싸우면 꼭 먼저 "미안해"라고 사과를 한다. 동생의 사과는 유난히 귀여워서 잔뜩 화가 났다가도 금세 얼음장이 녹아내리곤 한다. 자존심이 센 나와 자존감이 높은 동생의 차이랄까?



3. 한 번은 새벽녘에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 내가 참다 참다 소리를 쳤다. "H야! 너 꼭 이 시간에 과자를 먹어야겠어?" 그런데 아무 대꾸가 없어 침대 밑을 보니 동생이 이를 서걱서걱 갈며 자고 있었다. 이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 동생이 이갈이를 하는 걸 아마 그날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새벽에 혼자 어찌나 웃기던지. 동생이 그때를 기억하며 "너 꼭 이 시간에 과자를 먹어야겠어?"라고 외치는데 내 목소리가 잔뜩 묻어 나와 그저 우스웠다. 매일 아침 과자로 시작해서, 서랍장 한 칸을 과자박스로 채우는 동생에게 새벽녘 소음을 묻는 언니의 오해.



4. 동생은 낯가림이 심하다. 오죽 심하면 친척들이랑도 데면데면하다. 그런 동생이 형부인 K에게는 무척 살갑다. 처음 보자마자 둘은 이웃집 오빠, 동생처럼 급 친해졌다. 한눈에 가족을 알아본 건가? 지금도 동생은 내가 K 흉을 볼 때마다 K의 편을 든다. 오빠가 불쌍하다. 오빠 같은 사람 없다. 오빠는 진짜 착하다. 감정에 빠져 있는 나를 K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동생 덕에 K와 종종 화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늘 "언니 입장도 이해가 가"라고 말해주니, 그 공감에 위로를 받고 또 금세 풀리는 것이다. 나랑 너무 많이 싸워봐서 나를 공략하는 법도 잘 안다. 만렙.



5.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내 이야기들. 때로는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외로움이 두려운 바보 같은 감정까지도. 다른 누군가는 미친년으로 볼 수도, 오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라 숨기고 감춰야만 하는데, 내 역사를 오롯이 알고 있는 동생은 이런 나를, 나보다도 더 이해한다. 오로지 동생만이. 동생 또한 누구에게도 풀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또다시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오늘도 역시, '자매'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생은 본래 고독한 것인데, 자매마저 없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의사가 묻는다. "온전한 내 편 있어요?", "……동생이요.", "참 다행이네요." 의사의 질문에 처음으로 인식한 온전한 내 편. 그게 너였다.



6. 네가 있어 38년 덜 외로웠고, 네가 있어 오늘도 고마웠다. (고흐와 태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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