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혼선언문 #시아버지 #사랑
"성혼~선언문"
그 어떤 연설보다 눈부신 선언이었다
하루에 몇 십 번을, 이렇게 저렇게 연습하고 또 했을
우렁찬 목소리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우리 공~주~"
그는 나를 공주라 불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수식어
그는 우리 아빠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우리 엄마보다 나를 더 아껴주었으며
남편보다 나를 더 존중해 주었다
"내 일자리 뺏지 마라~"
그는 내 손에 한 번도 물을 묻히지 않았다
설거지로 찾은 집안의 평화
그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으며
누구보다 나를 존중해 주었다
"오늘 이 자리는 신랑의 부모인 저희들에게 새로운 딸을,
신부의 부모님에게는 새로운 아들을 얻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신랑 K군과 신부 A양이 부부가 되었음을 양가 친지와 내빈 여러분께 선언하는 바입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성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의 선언이라 평생 지킬 것을 맹세한다
시아버지는 아마 내가 아니라 어떤 며느리였어도 그렇게 사랑을 듬뿍 주셨을 분이다. 사랑과 배려가 많은 사람. 따뜻하고 인정 많은 사람. 그런 분이시다, 우리 아버지는. "내 일자리 뺏지 마라~" 하시며 늘 과일을 챙겨 어머니 옆에 앉도록 하셨던 아버지. 그마저 과일은 어머니가 깎으셨다.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면 자주 오지 못하고, 시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면 며느리가 불편하니 본인이 하는 게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한 일이라며 신혼 때부터 물 한 번을 묻게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 아빠도 영향을 받아 대가족의 잔뜩 쌓인 설거지를 아빠가 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울산에서 이곳으로 터전을 옮긴 후 한 번도 낚시를 가지 못하셨다. 담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손주가 태어나고 건강을 위해 과감하게 담배를 끊어내셨다. 시아버지의 결심과 실천을 직접 보고 겪은 덕분인지 남편도 아이를 낳자마자 담배를 끊었다.(본인 말로는 휴식기라고 한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집에서 소소하게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은 아버지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작은 텃밭을 가꾸시며 그 마음을 대신 고르고 계신다.
아버지는 배 안에 불을 밝히고 배를 움직이게 하는, 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은퇴 후에도 여기저기서 아버지의 기술을 원할 정도로 능력 있는 분이다. 기술뿐이랴. 사람들과 어울리고 살뜰하게 챙기며 맡은 바를 끝까지 책임지는 그의 인품은 그의 나이처럼 더욱 익어갔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묵묵히 담담히 제 할 일 모두 마치고 정박한 오래된 배처럼 좋아하는 모든 걸 멈추고, 배를 만들러 몇 달, 몇 년씩 가족을 떠났던 시간을 보상하듯 집을 가득 채우고 계신다. 새벽에는 매일 등산을 하고, 낮에는 텃밭을 가꾸고, 낮잠도 자고, 밤에는 손주랑 블록으로 배를 만들며 켜켜이 가족의 시간을 채우고 계신다. 아버지의 멈춤이 쓸쓸해 보이지 않고 선착장에 숨 고르는 배처럼 평온해 보인다. 나는 그의 삶이 존경스럽고 그의 삶을 닮아 가고 싶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배려있고 다정한 남편과 할아버지를 닮아 나를 많이 아껴주는 우리 아기까지. 아버지 덕에 나는 삼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온기로 채워졌다.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몸소 알려주고 계시는 아버지. 우리는 당신을 닮고 싶어요. 닮아가고 있어요. 닮을 거예요. 당신은 우리의 우주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선언을 꼭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당신의 휴식도 당신의 항해도 나는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