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2부. 익숙한 세상과 안녕
3. 영화관
한번 나가 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느린 마을에서 번화가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교통이 좋던 예전 집과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해도 걸어서 15분 걸리는 언덕을 걸어 내려가야 하므로 나의 외출은 점점 드문 일이 된다. 마을버스를 타면 지하철 출입구로 빠르게 데려다주지만, 느린 마을로 올라오는 버스 간 시간 간격이 커서 차라리 걸어 내려가는 편을 택하는 게 낫다.
예전 집에 살 때만 해도 심심하면 혼자 영화 보러 가길 좋아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보면 같이 보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보고 나온 영화가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미가 있으니 없으니 하는 게 불편해서 나는 누구랑 같이 영화 보러 가는 걸 꺼린다. 특히 잔잔한 영화면 그저 지겨워하는 사람이랑은 결이 아예 안 맞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 보는 편이 속 편하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면 의외로 인생 영화를 많이 찾게 돼서 좋은 점이 많다. 별 기대 없이 본 영화가 너무 좋으면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황홀감에 푹 젖어서 귀가하곤 했는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때는 영화에 미쳐서 하루에 3편을 몰아본 적도 있었는데 지금 하라고 하면 허리가 아파서라도 못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은 바뀐 게 많다. 예전에는 공간이 협소했는데 이제는 대폭 오른 영화관람료에 맞게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넓어졌다. 게다가 의자가 리클라이너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반쯤 누워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옛날만 생각한 나는 혹시나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영화관람을 방해할까 봐 습관대로 맨 뒷좌석을 예약했다. 와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단 걸 알게 되자 괜히 기분이 좋다. 나는 의자를 조작해 다리를 뻗고 편하게 눕는다. 오래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뻐근하던 옛날 싸구려 빨간 의자와 다르게 리클라이너 의자는 펑퍼짐한 엉덩이를 포근하게 잘 품어준다.
내 옆에는 줄줄이 아줌마들이 앉아있다. 실은 할머니와 아줌마 사이쯤 되는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나이 든 사람들이 정정한지라 나이 분간이 안 간다. 엄마 또래 즈음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들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영화 시작 전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빠져든다. 편한 의자가 영화의 집중력을 한층 더 끌어 올려준다. 더는 불편한 엉덩이에 신경을 집중할 필요가 없고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내 의자를 건드려 신경 거슬릴 일이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그 순간, 어딘가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심지어 진동도 아닌 벨소리가!
벨소리의 당사자는 내 왼쪽에 줄지어 앉은 중년 여성 중 한 명이다.
놀라 전화를 끊을 법도 한데 여자는 끊지 않고 당당하게 전화를 받는다. 나는 옆에서 통화하는 여자의 통화내용을 선명히 들을 수 있다는데 충격을 받는다. 여자는 개의치 않고 통화를 이어간다. 아마도 택배 관련 전화를 받은 모양인데 여자의 통화는 30초가량 이어진 끝에 조용해진다.
……뭐지?
그 후로 한 번 더 영화관을 찾은 나는 또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다. 이번에도 중년의 여성이다. 할머니와 아줌마 사이 그 애매한 중년은 이번에도 영화가 시작한 후 걸려온 전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여성의 목소리는 상영 중인 영화 음량을 뚫고 영화관 안을 사정없이 돌아다닌다. 나는 그 모습에 경악하고 만다. 한번은 그렇다 쳐도 두 번이나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건 이런 일이 상습적으로 일어난다고밖에 볼 수 없다. 리클라이너 의자가 소파 같아서 자기 집 안방인 줄 착각한 걸까?
내가 고립된 사이 세상에 무슨 큰 변화라도 생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