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3부. 느린 마을에 스며들다
6. 핸드폰
통신사 개인정보가 일부 털렸단다. 무료로 유심을 교체해 준다길래 근처 대리점으로 갔다.
“핸드폰이 오래됐네요?”
“네. 한 8년 썼나?”
차라리 폰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대리점 점주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한다. 점주는 마침 지원금이 많이 나와 최신 핸드폰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하필 그 폰이 내가 올해 바꿔야지 했던 모델이다. 나는 그러자고 한다.
바꾼 폰은 전에 쓰던 거보다 무겁다.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갈 것 같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예전 폰에 있는 사진을 옮기기로 한다.
예전 폰에는 이미 클라우드에 사진이 꽉 차 4천 개가 넘는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 폰 자체에만 저장돼 있다. 이것들을 다 옮기려면 클라우드에 있는 사진들을 다 비워야 한다. 나는 클라우드를 비우면 남은 사진들이 자동으로 업로드될 걸로 생각하고 일단 클라우드 사진들을 컴퓨터로 내려받아 외장하드로 옮긴다. 몇 분이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가득 찬 클라우드 사진을 내려받는 데만 해도 몇십 분이 걸린다. 핸드폰 자체에 저장된 사진까지 옮기려면 이틀을 꼬박 새워도 안 될 것 같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파일을 내려받으려니 시간이 배로 더 걸리는 것 같아 나는 적당량을 나눠 하드로 내려받는다. 그런데 몇몇 사진과 동영상은 컴퓨터에서 확인이 안 된다. 뭔진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려받은 사진도 문제가 있지만 더한 문제가 생긴다. 이상하다. 클라우드는 텅텅 비었는데 사진 앱에 있는 사진이 업로드를 못 한다. 계속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나는 아이폰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인지 알아본다.
“클라우드 비웠는데도 사진 업로드가 왜 안 되죠? 그리고 컴퓨터로 내려받은 사진, 동영상 파일 중에 열어볼 수 없는 것들도 있던데 이건 또 왜 이래요?”
“일단 클라우드를 비워도 업로드되지 않은 파일이 클라우드 용량을 넘어서면 업로드가 안 돼요. 한 번에 업로드가 되는 거라서 클라우드 용량을 초과하면 업로드가 안 됩니다. 그리고 아이폰은 화질을 위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할 때 자체적인 파일명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컴퓨터에서는 안 열릴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폰에서만 제대로 열리고 컴퓨터에서 열려고 하면 제대로 안 보일 수 있어요.”
고객센터 직원은 아이클라우드를 더 큰 용량으로 늘린 다음 파일을 다 옮긴 후에 사진과 영상을 내려받거나 아니면 폰에 있는 사진들을 네이버 마이박스에 업로드한 뒤에 컴퓨터로 내려받으라는 조언을 한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진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 예전 폰에 있던 사진 앱에 사진들이 마구 뭉텅이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 뭉텅이가 사라지더니 다른 뭉텅이가 또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남은 사진이 몽땅 날아가 버린다.
보통 사진이 삭제되면 삭제된 사진 폴더에 사진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날아간 사진들은 그곳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지난 8년의 추억들이 사라진다.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삶은 내 맘처럼 흐르지 않고 원치 않는 육아를 해야 하는 하루가 지독히도 싫었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시간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그 시간을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쓰고 있다.
나는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건다. 두 번째 전화를 받은 고객센터 직원은 친절하게도 사라진 사진들을 복구해보겠다고 한다. 수천 장의 사진 중에 복구한 사진 일부가 아이클라우드에 나타난다. 그 양만 해도 방대하다. 나는 그것들만 내려받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긴다. 복구한 사진들을 내려받고 그것들을 삭제하면 다시 복구된 사진들 틈에 내려받은 사진들이 뒤섞여 나는 결국에 무엇이 받은 사진이고 무엇이 받지 않은 사진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다. 그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만 골라 내려받기로 한다. 다시 훑어본 사진과 동영상에는 거의 내가 없다. 동영상 속 나는 영상 뒤편에 목소리로 남아있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의 행복들이 소소하게 담겨있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는다. 깔깔 웃는 걸 보니 진짜 행복한 웃음이다. 그중에 가장 살리고 싶은 기억만 고르고 고른다. 이상하다. 이상하게 서럽다. 아쉽고 서럽고 슬프다. 그저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제야 알겠다. 힘든 순간도 행복했다는 걸 알겠다.
고르고 고른 사진들만 남기고 구하지 못한 사진들은 꼭꼭 씹어 눈과 마음에 담는다. 사진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그날 밤 꿈에 바퀴벌레 몇 마리를 본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엉엉 운다. 울 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꿈에서 목 놓아 우는 호흡을 따라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뱉는다. 몇 번 숨을 몰아쉬다가 잠에서 깬다. 눈을 뜨자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진이 사라진 건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 나를 위한 삶을 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에 남겨두고 이제 나를 위한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가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기로 한다.
나는 아이가 나를 붙잡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를 붙잡고 있었나 보다. 힘들다 했던 그 시간을 내가 붙들고 있었나 보다.
이제 진짜 놓아줄 시간이 온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