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느린 마을 일기 3부. 느린 마을에 스며들다

by 이나

8. 파도


다행히 형부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이 맘처럼 풀리지 않을 때 평소와 달리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므로 과정에서 있었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아마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는 노력과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한때 형부와 가족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수준으로 망가지기도 했었는데 다행히 서서히 회복되어 이제는 편안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형부가 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이 글을 시작하고 완성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에 한 일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건 뭐야?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뭐 대단히 신나고 그런 것보다도 그냥 소소하게 날 좋은 날 걷는 거 좋아해서 작지만 기분 좋아지는 그런 걸 하는 듯요. 매일 신날 수는 없으니까.”

“혼자서?”

“네. 근데 저는 보통 큰일 없으면 기분이 늘 좋은 편이에요.”

“오, 나도 그런데.”

“잠만 잘 자면 늘 기분이 좋은..”

“그니까 기본적으로 복잡한 일이 없으면 행복하단 거네?”

“그쵸.”

“나랑 똑같네! 그럼 복잡한 일 없이 지내는 비결이 뭐야?”

“보통 저는 감정적인 편이 아니라서 감정 변화가 별로 없는데 뭔가 상황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면 그냥 받아들여요. 충분히 느끼고 굳이 벗어나려고 노력 안 해요. 그러면 빨리 회복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방법 진짜 멋있다. 나는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 타입이라 감정을 그냥 받아들이는 걸 배우는 게 나한테 꼭 필요해 보인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어,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 빠르게 회복된 다고 했잖아. 그럴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뭐야?”

“한때는 저도 좀 감정적이고 불안이 많았어요. 근데 방법을 계속 찾고 시도하다가 깨달은 거죠. 그냥 원치 않는 감정이 올라오면 속으로 말해요. 그럴 수 있다. 그 감정을 이해해주는 거예요. 나쁜 감정을 밀어낸다고 안 밀어지기 때문에 그냥 수용해야지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속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래도 된다. 그런 감정 느낄 수 있다. 이해한다고 스스로한테 말해줘요.”

“감정을 다루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네. 네가 자신을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말해주는 방식은 너의 강인함과 자기 인식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아. 내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그걸 어려워하는 것 같거든. 나도 가끔 그렇고.”

“맞아요. 저도 똑같아요. 어느 순간 파도가 오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냥 파도는 주기적으로 치는 거예요. 여태 힘들어한 게 파도가 안 오길 원했기 때문이었어요. 이제는 파도가 와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깨달아 다행이죠.”

“정말 깊이 있는 시선이네. 대부분은 파도에 맞서려 하는데, 너는 파도에 맞춰 움직이는 법을 배웠네. 그런 사고방식이 사람을 정말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궁금한 게 있는데, 그 파도들이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아니면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 뿐인 거야?”

“안 좋은 일이 닥치면 당장은 약해지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강해져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일 겪을 때마다 힘든 건 똑같아요. 더 힘들 수도 있겠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아니까 괜찮은 거고….”

“맞아. 고통이 꼭 작아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 고통에 둘러싸여 성장하는 걸 수도 있지. 그걸 헤쳐나가는 방법을 안 다는 것도 그것도 하나의 강인함인 거고. 비록 그 순간엔 강하다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맞아요.”

“가깝고 특별했던 관계들이 잠시 느려지거나 사라질 때는 어떻게 해?”

“사람 관계에 연결을 말하는 거예요?”

“둘 다. 관계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거나 혹은 관계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 대해서.”

“그냥 그런 변화도 받아들여요.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함부로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거든요. 저는 그냥 신의 큰 뜻을 의심하지 말자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는 참 운이 좋다. 길고 힘든 순간을 아직 젊은 나이에 겪어서 다행이다. 일찌감치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되는지 깨달을 수 있어서 나는 참 운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시간에 부모님이 건강히 내 곁에 계시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내 곁에 머물러 있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참 다행이다. 일찌감치 힘들어봐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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