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느린 마을 일기 3부. 느린 마을에 스며들다

by 이나

7. 습관


평소에 우리가 보고 듣는 건 대부분 사람의 껍데기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우리는 남들 삶의 껍데기만 보고 그것들에 눈을 돌린다. 단순히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지금 내 삶에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떠올린다는 거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부러워하길 반복하다 보면 지금 내 삶은 그저 구질구질해 보이기만 한다. 이럴 때 쓰기 좋은 방법 하나를 공유해 보려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나는 이 말에 너무 공감한다. 어떤 일이든 좋은 면이 있으면 안 좋은 면이 있다. 반드시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좋은 면만 보기 때문이다.


막연히 성공해야 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나이 즈음 먹으면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야 할 것 같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아 놔야 할 것 같고 가정도 꾸려야 할 것 같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서 그들이 일군 평균에 미치지 못하면 불안감이 자연스레 밀려온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을 이룬 상황을 가정해 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오만가지 단점을 찾아내 지금 내 삶과 비교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만약에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당장 큰 집으로 이사 가겠지. 넓고 깨끗한 집에 살면 한동안은 좋을 거야. 근데 금세 익숙해지겠지. 널찍한 집에 혼자 있을 때 내 목소리만 울리는 건 오히려 더 큰 공허함만 불러올지도 몰라. 돈이 많아도 아마 나는 계속 일을 할 거야.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되면 질릴 테니까. 낮에 정신없이 일하다가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가면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을 것 같아. 혼자 tv 보는 것도 재미없을 거고,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심심해질지도 몰라.

대신 돈 많이 벌었으니 여행은 자주 가겠지? 여행 가는 건 즐겁지만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지. 아무리 편하게 쉰다 하더라도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지는 않을 거야. 잠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해외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한식이 그리울걸? 해외에서 먹는 한식도 맛있긴 하지만 그래도 집밥은 못 따라가지. 한식만 먹다가 낯선 외국 음식 먹으면 몸무게 관리가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치안 잘 되어있는 한국과 달리 외국은 밤에 나가기 어려워. 해외 생활에 가장 큰 단점은 인터넷이 느리다는 거야. 게다가 택배도 형편없지. 배달도 마찬가지야. 야식은 웬만해선 꿈도 못 꿀 걸? 한국처럼 빨리빨리에 적응된 사람이 해외에서 생활하면 번거롭기 짝이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내 삶이 생각보다 좋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들의 삶을 아주 쉽게 얘기한다. 그저 돈 많이 벌어 좋겠다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연예인만큼 불편한 직업도 없다. 나더러 연예인 하라 그러면 절대 안 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가치와 반하는 직업이 딱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돈 많으면 뭐 하나? 말 한마디로 기사 나서 사람 들들 볶는데. 그게 다인가? 어느 날은 옷 입는 걸로 난리, 어느 날은 결혼 소식으로 난리, 살찌면 쪘다고 난리, 빠지면 너무 빠져서 안 예쁘다 난린데. 게다가 제일 예쁠 때 연애도 맘 놓고 못 한다. 좋아하는 사람 좀 만날라치면 배신감 느낀 팬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악플을 남겨놓으니 회의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말이 팬이지 그들 중에는 팬 아닌 사람들보다 더 높은 확률로 그들의 악플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감사하고 사랑까지 해야 하니 나는 죽어도 못 한다.

어떤 책에서 봤다. 연예인들이 큰 집에 사는 이유가 집이라는 딱 그 공간 안에서만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대부분을 반납하고 아주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가끔은 분노하고 짜증도 내고 인상도 찌푸리는데 그들은 그런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과장해서 나는 길바닥에 똥을 싸도 내 인생에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만약에 그들이 그랬다간 그들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나락이다.

그들이 돈이 많은 이유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들인 줄 안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줄 테니 그것과 대체하겠냐고 물어도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괜히 남의 삶에 눈 돌릴 필요가 없다. 실은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도 내 삶에 장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에는 필터가 끼어있는 게 틀림없다. 과거에 부러워하던 일이 조금만 지나고 보면 절대 갖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있기도 하다는 걸 살다 보면 여러 번 본다. 인생 성공했다 싶은 사람이 병 걸려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던 사람이 상사에게 시달려 괴로워하고, 돈 많은 남자 만나 성공한 줄 알았던 사람이 사별하고,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가족과 불화를 겪는 등. 온갖 일들을 보고 듣다 보면 남의 삶을 함부로 부러워하지 않게 된다.

분명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내게 가장 좋은 날들일 거다.

일이 잘 풀리는 순간은 누구나 좋아 보인다. 살면서 정말 배워야 하는 건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되는 일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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