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by 이나

6. 새집


이 집으로 이사 오며 알게 된 건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더워지면 매미가 귀를 찢을 듯이 울어댄다. 마을을 가득 메우는 자연의 소리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린다.

엄마는 베란다가 생기자 좋아하던 화분을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한다. 옛날 집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예전에 살던 집은 집 주위를 빙 둘러 약간의 공간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곳에 작게나마 화분 몇 개를 두고 키우셨다. 예쁘게 가꿔놓으면 누가 홀라당 가져가 버린다며 속상해하던 엄마는 이제 속상할 일이 없다.

엄마는 화초 키우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꽃 피우기 힘들다는 나무도 엄마 손에만 들어가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곤 한다. 시들어가는 나무나 꽃도 주워다 며칠만 돌보면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엄마는 자연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다.

더운 여름에 옥상에 올라가면 밤공기가 생각보다 시원하다. 낮에 한껏 달아오른 옥상 열에 집안은 푹푹 쪄도 옥상은 오히려 차갑게 식어있다. 바람까지 불어오면 세상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옥상이 크고 넓어서 이불 빨래 서너 개를 한 번에 척척 걸어도 자리가 남는다. 낮에 널어 말린 빨래에서는 따스한 햇볕 냄새가 진하게 밴다.

아빠는 옥상에다 텃밭을 키운다. 원래는 엄마가 사부작사부작 만들기 시작한 건데, 시골 생활이 익숙한 아빠가 고집스러운 참견을 시작하자 엄마가 두 손 두 발 들고 텃밭 가꾸기에서 손을 뗐다. 엄마는 베란다 꽃을 가꾸고, 아빠는 옥상에서 텃밭을 키운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채소 떨어질 일이 없다. 고기는 종종 없어도 상추는 다 못 먹을 정도로 많다.

아빠는 흙에 뿌리 내린 모든 것들을 물을 질식할 정도로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잘 자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 말은 또 다르다. 물을 많이 줘야 하는 화초가 있고 적당히 줘야 꽃을 피우는 화초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빠는 그 말이 틀렸다고 우긴다. 베란다에 꽃 핀 모든 화초가 다 아빠가 물을 충분히 줬기 때문에 꽃을 피운 거라고 말한다. 이에 엄마는 물 좀 많이 주지 말라고 소리친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화초가 뿌리까지 다 썩었다며 불평이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가 우긴다고 우기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빠가 우긴다고 우긴다. 화초에 대해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대체 누가 우기는 건지 모른다. 정말 미스터리다.

겨울에 이 집은 조금 춥다. 집 자체가 큰 데다 바닥에 열선이 꼼꼼하게 깔려있지 않아서 내도록 보일러를 돌려도 방 안 공기까지 따뜻하게 만들기는 역부족이다. 그저 예전 집처럼 발 시리지 않은 것에 만족한다. 적어도 이 집에서는 동상 걱정은 없다.

집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대학교 축제 기간이 되면 창문 밖으로도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1년 학비가 공중에서 화려한 자태로 소멸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크고 화려할수록 내 창문은 더 근사해진다.

아빠가 데려와서 일 시킨 인부는 아마 중간에서 삥땅을 해먹은 게 분명하다. 보통 천장에나 바르는 합지로 온 벽을 칠해놓은 것을 보면 몰래 돈 남겨 먹은 게 확실하다. 해가 유난히 잘 드는 내 방에는 햇볕이 닿는 곳마다 벽지가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누가 보면 방 안에서 담배라도 태우는 줄 알겠다. 처음엔 새하얗던 벽지가 어느새 누리끼리 해졌다.

해가 닿지 않는 엄마 방과 동생 방은 아직 벽지가 멀쩡하다. 남동생은 게임 하는 게 낙인 앤데 어찌나 열정적으로 게임을 한 건지 컴퓨터 책상 아래에 벽을 뚫어 놨다. 딱 자기 발 닿는 자린데 자기가 안 했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엄마 방에는 미스터리가 있다.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인데 그 방만 모기가 늘 많다. 방충망을 연 적도 없는데 대체 모기가 어디서 기어들어 오는지 여름만 되면 엄마는 밤마다 전기 모기 채를 들고 방을 들쑤시고 다닌다. 엄마 말로는 “눈깔만 붙은 게 잡아 뜯는다.”라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눈깔만 붙은 모기는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엄마 방에만 사는 미스터리한 모기인가 보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와서는 목 아픈 날이 많았다. 목에 먼지가 잔뜩 낀 것처럼 이물감이 들곤 했는데 물을 아무리 마셔도 해결이 되지 않아 알아보니 낡은 창문이 문제였음이 밝혀졌다. 창문에 틈새 막이 용으로 붙어있는 방풍 털이 낡아 손만 슬쩍 갖다 대도 삭은 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그것들이 죄다 내 기관지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먼지 잔뜩 머금은 저것들이 내 콧속으로 들어왔을 걸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폐에 가시 같은 것들이 콕콕 박혀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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