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7. 결혼
언니는 걸핏하면 애를 데리고 집으로 내려온다.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한번 왔다 가면 이틀은 앓아눕게 된다. 언니는 형부와 함께 사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허구한 날 어려움을 토로하고 불만을 늘어놓는다. 언니 말이 다 맞으면 형부는 정말 천하에 몹쓸 놈인데 언니 성깔도 만만치 않아 말은 안 하지만 끼리끼리 만났구나 싶다.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잘 살고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오히려 불행해진다. 왜일까? 나는 뭐든 분석하고 통계 내는 걸 좋아한다. 세상은 자주 그리고 쉽게 변하지만, 그 속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 같은 것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을 분석하길 좋아한다.
결혼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도피성으로 결혼을 택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결혼생활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하다면 각자 부모님이 사는 모습을 보면 된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그래도 밥은 챙겨주는, 내가 욕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욕하면 열받고 화딱질 나서 괜히 안쓰러워지고 마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이 평생 반복되는 이상한 관계. 그게 부부 사이의 핵심이 아니고 뭔가?
우리 부모님만 유별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구나 다 이러고 산다. 남과 남이 만나 평범하게 사랑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공익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말도 안 되게 화목한 가정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주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다. 만약 내가 공익광고 속 여자처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상대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 어떤 새로운 상황이 와도 내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국에 상황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는다. 그걸 안다면 결혼에 내 삶을 거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게 될 거다.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피 섞인 가족과도 안 맞는데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찰떡궁합을 자랑하기를 바란다? 로또 맞을 궁리를 하는 게 더 현명할 거라고 본다.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지탱하지 못하면 남과 함께 사는 삶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도 내 삶은 내 거다. 내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도망치지 말고 어려움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성장하는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선택하는 경우다. 특히 모성애가 강한 여성들이 이런 오류를 범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기 얘길 잘 안 한다. 그래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쓰러워 보이는 건 사실이다. 사회생활 하면서 말 못 할 어려움을 품고 사는 남자들을 보면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결혼에 있어서 이런 짠함을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면 곤란하다.
이렇게 결혼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내가 아니면 이 사람 누가 거두겠어요?”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평생 봉사하고 사실 예정이신가요?”
결혼할 사람을 ‘거둔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상대방이 안쓰러워서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을 감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희생하겠다는 생각이 당신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걸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보다. 당신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외간 남자를 위해 남은 평생을 희생하겠다고 선포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그렇게 돕고 싶다면 차라리 봉사활동을 가라. 당신이 아니라도 또 당신 같이 모성애 많고 스스로 희생하는 게 익숙한 여자들이 그 남자를 거두려고 줄을 설 것이다. 당신만이 그 남자를 보고 측은지심을 갖는 게 아니다. 그 측은지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하지 않고 덥석 결혼해버리는 또 다른 여자들이 생각 외로 많이 있다. 그러니 당신은 패스해라. 당신을 위해서.
물론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삶에 모든 선택은 정답이 없다. 원치 않는 선택을 했다는 걸 아는 그 순간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언제 어디서든 상황이 어떠하든 방향 설정만 잘하면 될 일이다.
조카가 양말 한 짝을 내 방에 두고 갔다. 버려진 양말 한 짝에서는 아기 냄새가 듬뿍 베여있다. 나는 양말을 코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뱉는다. 중독적인 이 냄새를 끊을 수가 없다. 조카가 또 보고 싶다.
그런데 진짜 형부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걱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봤자 우리 언니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