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5. 꿈
꿈에서 나는 여전히 예전 집에 산다. 내 무의식은 아직 이 집이 내 집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에 살던 집은 주기적으로 도둑이 드는 곳이었다. 가족 단체로 시골에 다녀온 날 한번 털린 이후로 도둑들의 타겟이 된 우리 집은 매년 여름 즈음에 도둑이 들곤 했다. 금붙이란 금붙이는 해마다 야금야금 다 털어가서 우리 집엔 금이 없었다. 그런 건 어린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진짜 내가 무서워한 건 어쩌다 운이 정말 좋지 않은 어떤 날에 도둑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그 집에는 유독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찝쩍거렸다. 한 날은 술에 취한 아저씨가 대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잠시 자고 가도 되냐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언니와 내가 잠든 방 창가에 서서 몰래 우리가 자는 모습을 훔쳐보던 남자를 잠든 우리를 확인하러 왔다가 놀란 엄마가 내쫓은 적도 있었다. 집 안에 있어도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해코지 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건 옆 방에서 부모가 버젓이 자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다 도둑들 때문이다.
도둑 때문에 나는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창살이 사실은 내 안전을 책임질 만큼 튼튼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도둑은 부모님 방이 있던 안방 창문 창살을 열어젖히고 집으로 침입했다. 그게 어른의 힘으로 손쉽게 휠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도둑은 집 뒤로 들어가는 입구에 발자국 하나를 남겼는데 과학수사관들이 와서 남은 증거물을 수집해 갔음에도 잡히지 않았다. 엄마는 휘어진 창살을 다시 엉성하게 편 채로 그 방에서 그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새벽이었다. 언니는 유난히 이른 시간에 등교했기 때문에 새벽 4시에도 집을 활보하고 다녔는데 하필이면 그날 겁도 없고 기도 센 우리 언니에게 수상한 남자의 모습이 포착된다. 예전 집은 현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거실이 시작되는 구조였는데 불투명한 유리와 은색 쇠로 된 현관문 바로 옆에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밖에서 들여다보면 안방을 제외한 집 내부를 훤히 다 볼 수 있었다. 그 창문에 낯선 남자가 들러붙어 우리 집을 훔쳐보는 걸 언니가 목격한 것이다. 언니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남자는 전화를 받는 척 잠시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러나 멀리 가지도 않고 우리 집을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전화받는 척을 했단다. 께름칙하긴 했지만, 등교 준비로 바빴던 언니는 잠시 다른 볼일을 보러 갔는데 우연히 다시 창문을 보게 되었을 때 또 그 남자가 우리 집을 보고 있던 걸 발견하면서 순간 확신했다고 한다.
‘이놈 분명히 뭔가 있다.’
언니의 흔들림 없는 기세와 질긴 시선에 남자가 사라져 버린 그날, 우리 집은 괜찮았는데 단칸방이 우르르 몰려 있던 맞은편 여러 가구가 무더기로 털렸다.
밤이 되면 그 집은 유난히 으스스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 집에서는 새벽에 화장실 가기가 꺼려졌다. 캄캄한 부엌 쪽을 보고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이 되고 불이 꺼지면 되도록 그 주위를 지나다니지 않았다.
우리 집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밖으로 난 2층 주택이었다. 1층에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2층에도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로 1층에는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이 같이 살았고 내가 고등학생 때 이후로 나와 언니는 2층에서 따로 생활했다. 그래서 엄마는 생각보다 나를 잘 모른다. 같이 산 언니도 실은 나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집에 들어가기 전 2층 현관 앞에서 매일 울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하고 싶은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내가 정말 나를 죽일 것 같아서 매일 그 앞에서 기도했다. 현관을 등지고 서면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보였는데 블랙홀처럼 컴컴하고 음산한 그곳을 보며 매일 울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 말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살아생전 바람이나 피우고 엄마 험담이나 하시던 내 조부모였지만 그래도 이승에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죽어서 깨우친 게 더 많지 않겠냐는 생각에 나는 그렇게 했다.
어차피 2층에는 나를 기다릴 사람이 없어서 그냥 들어가도 상관없었지만, 혹시나 언니가 볼 것을 대비해 울었던 흔적이 가시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누우면 잠이 들지 않아 나는 또 울었다. 울어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살았다.
뭐 하나 좋은 기억이 없는 그 집에서 나는 아직도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무의식은 여전히 거기가 내가 사는 집이라고 말한다. 시궁창 같은 그 집에 섞인 공포와 슬픔이 여전히 내 속아 남아 나를 옭아맨다.
꿈에서 그것은 말한다.
“어딜 가? 넌 여전히 여기에 속한다는 걸 몰라? 여기가 너랑 어울려. 그렇지 않니?”
나는 꿈에서조차 반박하지 못한다.
그 집이 내 집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