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3. 아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참 신비로운 일이다. 저 자그만 게 어떻게 사람이 되지? 싶어도 제 개월 수에 해야 하는 행동은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한다. 뒤집기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할라치면 하루아침에 뒤집고, 안 걷는다 안 걷는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걸어버리는 게 애들이다.
끝없이 도전하고, 온갖 걸 보며 신기해하고, 종일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고, 내도록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고, 아침이 밝아오기도 전에 새벽 댓바람부터 눈 뜨고 활짝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의 놀라운 신체적 능력과 본능은 분명 내게도 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모습을 잃은 것 같다.
아이들의 발달이 때에 맞춰 이뤄져야 하는 것처럼 사회도 우리에게 때에 맞는 결과를 기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고, 대학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고 나면 결혼하고,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는 일련의 뻔한 스토리에도 절대적 시기라는 게 있어서 제때 해내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는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확률상 대부분은 이 틀에 맞춰 산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살다 보면 매사 모든 게 다 일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남들과의 비교에 지칠 때면 엄마는 내게 ‘때’를 말했다.
“다 때가 있는 거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 말을 믿고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래도 나를 위한 ‘때’는 좀처럼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점점 더 조급해졌고 매일 말할 수 없는 초조함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운 마음을 아는가. 저녁이 올 때 실망감을 아는가. 석양이 질 때 오늘 하루도 아무런 성과 없이 보냈다는 자책과 실망감에 괴로워하고 아침이 올 때 오늘 하루도 어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눈을 더 꼭 감고 버텨보려 했다. 좀처럼 발전이란 게 없는 삶에 지쳐 나는 빠르게 냉정을 잃고 있었다.
“어휴 못 하겠다, 못 하겠어.”
무슨 똥 마음이 내켜서 주문했는지 모를 색칠하기 D.I.Y 키트를 내려놓으며 엄마가 탄식한다.
“뭔데?”
“이거 색칠하는 건데 뭐가 눈에 보여야 말이지.”
잘린 손톱만 한 크기로 자잘하게 나뉜 구역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번호가 쓰여 있다.
“이걸 한다고 샀다고? 내 눈에도 잘 안 보이는구먼.”
“하고 싶으면 갖고 가.”
“그래.”
꽃사슴이 예뻐서 그러겠다고 한다. 완성하고 방에 두면 제법 볼 만한 장식이 될 것 같다.
첫날은 제법 열성적으로 색칠한다. 그어 놓은 선에 최대한 바짝 붙여 꼼꼼하게 붓질한다. 붓에 물을 너무 많이 묻히면 색깔이 옅어지니 물도 최소한으로 묻힌다. 한 시간에 걸쳐 색칠한 부분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색칠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겠지 생각한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색칠에 매진해본다. 완성한 그림은 빨리 보고 싶은데 색칠은 좀처럼 진도가 안 난다. 나뉜 구역도 손톱 크기로 작은지라 오래 보고 있으면 눈알이 사시가 되는 기분이다. 그래도 꾹 참고 색칠을 강행한다. 날이 갈수록 한숨이 는다. 각각 다른 날 칠한 색들이 물의 농도 차 때문에 얼룩덜룩해지자 연한 부분을 덧입히느라 일이 두 배로 는다. 그 사이 눈은 빠질 것 같고 집중력은 흐트러진다.
예전에는 몇 시간이고 그림만 그려도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이제 나는 색칠도 일처럼 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색칠해서 기필코 완성해보겠다는 다짐은 며칠이 가지 않아 의지를 잃고 만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만사가 다 일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좋아해도 일이 되면 모든 게 다 지겨워진다. 잘하는 거라도 있으면 그거에라도 매달려 볼 텐데 그런 것도 없다는 건 정말 절망적이다.
에라이, 집어치우는 게 낫겠다.
나는 들고 있던 붓을 집어던진다. 색칠하다 만 캔버스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지고 나는 점점 그것의 존재를 잊는다.
영원히 지치지 않고 매일 아침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왜 신은 턱도 없이 어린 나이에 준 걸까? 에너지 분배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지지부진한 삶이 지겹다.
내 삶은 언제쯤 다시 업데이트를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