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2. 외삼촌
“외삼촌 온다고? 왜?”
누군가 집에 오는 게 싫다. 집에 사람이 놀러 오면 대접하기 귀찮은 게 이만저만 아니다. 엄마 성격에 냉장고에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 음식도 푸지게 해낼 텐데 뒤치다꺼리 돕는 게 다 내 차지가 될 걸 생각해서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본다.
“난 싫어.”
“이사한 집도 볼 겸, 언니 결혼한다니까 네 형부 얼굴도 좀 볼 겸 해서 온대.”
외삼촌은 여느 때와 달리 장난기가 없다. 평소처럼 내게 말을 걸지도 않는다. 나를 보는 눈빛에 미소가 없다. 생기가 없달까? 평소와 다른 모습에 나는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외삼촌도 형부에게 어른의 면모를 보이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외삼촌은 마치 회사에 고용할 새 직원 면접이라도 보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댄다.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간 뒤 우리는 다 같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 속 외삼촌은 웃고 있지 않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5남매 중 가장 성공한 외삼촌이 돌아가시자 엄마 형제들은 크게 휘청거린다. 이제 걸핏하면 모두가 눈물바람이다.
“문디자슥… 그래도 가기 전에 자기 갈 날 알았던 것처럼 가족들 얼굴 한 번씩은 다 보고 갔네…….”
외삼촌은 멀쩡하던 이름 석 자를 잃고 문디자슥이 된다. 문디자슥은 이제 없는데 이상하게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외삼촌의 시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니가 임신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입관을 보지 않았다. 뱃속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수도 있다는 미신을 아주 무시할 수가 없어 우리는 그 말을 따랐다. 그래서 그런지 통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건 뭘까?
“삼촌 회사에서 일 좀 해줘라.”
일이 있기 거의 1년 전쯤 이모의 시어머니 장례식에서였다. 회사 운영이 녹록지 않은지 외삼촌은 그날 술을 아주 많이 드셨다. 아무리 오래된 직원도 내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거의 만취 상태로 비틀거리며 제대로 익지도 않은 컵라면을 마시듯 먹는 외삼촌을 앞에 두고 내가 한 대답은 어리고 또 한참 어렸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 건데요?”
이 대화를 끝으로 1년 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고민하는 척이라도 할 걸 그랬다. 나는 어쩜 그리 단호하게 묻자마자 저 말을 했을까? 왠지 그때 내가 한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만 같아서 한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기어코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만다.
외삼촌은 과음으로 돌아가셨다. 러시아 계약 건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일이 벌어지기 전날 자주 가던 절에서 땡중이 준 술을 마셨다는데 술에 취해 잠든 사이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개중에 가장 성공해서, 가장 돈이 많아서 외삼촌은 늘 형제들에게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우리 중 누군가가 외삼촌에게 뭔가를 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바보같이.
가족들은 고인이 생전에 바라던 것을 늦게나마 이뤄주기 위해 강진에 모이기로 한다. 강진에는 외삼촌이 일찍이 지어둔 펜션이 있다. 언제 한번 다들 시간 내 모여 놀면 좋겠다고 만든 펜션인데 막상 완공되고 ‘모이자’ 했을 때 흔쾌히 ‘오케이’한 가족은 한 명도 없었다. 하나같이 시간이 없다고 했다.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룬 게 막상 오늘이 될 줄 알았다면 이렇게 미루지도 않았을 일이다.
우리는 평생 뭐가 그리 바쁜 걸까? 그렇게 일해서 대단히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하루쯤 논다고 해서, 회사에서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에 큰 문제가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우린 왜 그토록 열심히만 사는 걸까? 언젠가 사라질 우리는 이미 끝을 다 알고 있음에도 왜 살아야 할까? 결말을 알고도 우린 왜 살아있을까?
평생 삶에 끌려다니려고 사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