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1. 달팽이 버스
일단 정류장에 도착하면 느려터진 마을버스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다. 간혹가다 잘못 걸리면 체감상 30분을 기다릴 때도 있으므로 여기 버스를 타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사람 머릿수에 턱없이 희박한 공기, 돌고 돌아 끊임없이 구불거리는 도로, 숨 돌릴 만하면 꺾어 올라가는 오르막길, 커브 돌 때 꽉 잡지 않으면 나자빠져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운전기사님의 노센스, 숨 막히게 좁은 버스 안, 바글거리는 사람들, 볼품없는 마을 어딜 둘러봐도 노인밖에 보이지 않는……. 어디 한 군데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느려터진 마을에 나는 갇혔다.
“왜 안 가?”
“그러니까 안 가고 뭐 하는지 모르겠네.”
기다림은 엄마에게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성질 급한 엄마는 지극히 엄마스러운 표현으로 눈에 띄는 곳에 알짱거리며 하릴없이 노닥거리고 있는 버스 기사를 가자미눈을 하고 흘긴다.
마을버스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어르신들이 많다. 기다릴수록 승객은 점점 늘어난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버스는 출발할 기미조차 없다. 엄마는 눈에 힘을 주면 시뻘건 레이저라도 쏠 수 있는 양 버스 기사 눈치를 준다. 하지만 기사들은 승객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느긋하다. 이에 엄마는 씩씩대고 내 얼굴은 기다림에 지쳐 말귀할멈처럼 녹아내린다.
대기 중인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세상 볼품없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일 정도다. 할 게 없을 때는 유튜브 쇼츠만 한 게 없다. 다채로운 영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단 몇 초로 충분하다. 나는 순간 영상에 취해 한동안 슬며시 웃다가 잠시 쏠쏠한 정보를 얻고는 다시 얼마간 무표정한 얼굴로 영상을 시청한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10분이 훌쩍 넘어간다. 딱히 대단한 영상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쇼츠를 본다. 한번 시작하면 고작 1분 남짓한 영상으로 몇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예전에는 긴 영상도 집중해서 잘 봤던 것 같은데 이제 아니다. 영화 한 편을 한 번에 보지 못하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10분쯤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마치 시험 하루 앞두고 몰래 컴퓨터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점점 짧은 일시적 쾌락에 매달리는가?
영상뿐만이 아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말에 책임 못 질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책 한 권조차 진득하게 읽지 못하면서 글 쓰는 일을 하길 바란다. 현실과 이상의 갭은 금방 집중력을 고갈시킨다. 글 몇 줄에도 사고는 금방 흐트러지고 만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읽어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심연에 설명하기 힘든 조급함이 내 목을 움켜쥔다. 흥미롭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끊임없이 쫓긴다. 무의식중에 나는 내 글과 타인의 글을 비교하고 내 스토리와 타인의 스토리를 비교한다. 끝없이 나를 평가하고 질책한다. 나는 몇 점짜리 삶을 살고 있는가. 나와 같은 나이대 평균은 어디쯤일까?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일어나야겠다.”
덕분에 현실 감각이 돌아온다.
어느새 버스 안은 저마다 짐을 든 노인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나처럼 언덕배기 마을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나이 든 노인에게 자리를 넘긴다. 노인은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주황색 봉 옆에 찰싹 붙어선다. 서서 가게 되었지만 맨 뒷자리에 앉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자칫 버스 뒷좌석에 앉게 되면 내릴 때 성가신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리와 자리 사이 좁은 틈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으면 내릴 때 번거로운 건 물론이고 하차 벨 누르기도 어중간하다. 거칠게 오르막을 오르는 버스를 이겨내며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 하차 벨을 눌러야 할 수도 있다. 자칫 차가 돌연 좌우로 꺾기 시작할 수 있으니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차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봉을 더 꽉 쥐고 차가 왼쪽으로 꺾으면 이번엔 왼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 용을 써야 할 테니까.
한동안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묘기에 가까운 봉춤을 추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을 찾아 떠난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기사의 난폭한 운전에도 내릴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 엄마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 감사 인사를 건네고 기사는 “네. 안녕히 가세요.”하고 자못 자상히 인사를 받는다. 나는 방금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얼빠진 사람처럼 아무런 인사 없이 엄마를 따라 버스를 내린다.
운전 솜씨는 뛰어날지도 모르나 마을버스 기사의 배려는 꽝이다.
아, 평지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