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다 와 가?”
“어. 이제 진짜 다 왔다.”
“아까도 다 왔다며.”
“진짜 다 왔다니까. 저기만 넘어가면 된다.”
엄마의 걸음걸이는 나와 다르게 경쾌하다. 마치 소풍날 들뜬 어린아이같이 신이 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엄마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조막만 한 마을은 오르고 또 올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모습을 드러낸다. 예쁘지도 않은 게 이 고생시키는 게 괘씸해 더 꼴 보기 싫다. 외벽은 싸구려 붉은 벽돌이 감싸고 있고 대문 입구에 문턱은 망치라도 크게 맞은 듯 내려 앉아있다. 가파른 언덕 초입에 뒤꿈치를 든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집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마을에 모여있다. 간혹 들려오는 건 마을 주민들의 잔잔한 목소리와 이따금 오가는 마을버스가 전부인 듯하다.
아직 공사가 한창인 집 내부는 겉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낡았다. 1층에 있는 화장실은 듣도 보도 못한 옥색이 컨셉이다. 살다 살다 옥색 변기는 처음 본다. 변기에 맞춰 바닥 타일도 옥색이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공중변소 냄새가 물씬 날 것 같이 생겼다.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보이는 주방은 수납장만 봐도 족히 40년은 돼 보이는 묵은 자태를 유물 마냥 고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때는 제법 살았으나 지금은 그저 그런 재산만 남은 고집스러운 양반들이 살 것 같은 집이다.
2층은 1층보다 조금 낫지만 크게 형편이 다르지 않다. 거실 벽이 온통 짙고 어두운 나무로 뒤덮여 있어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베란다로 난 큰 창으로 햇볕이 시원스럽게도 든다며 기뻐한다.
“낮에 해가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게 딱 보니 이 집이 훨씬 낫더라고!”
같은 골목 가장 끄트머리 집에 이사하기로 한 이모가 숙고 끝에 포기한 이 집이 엄마는 반듯해서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 사이 아빠는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방들을 돌아다니며 벽을 손보고 있다. 평소 무뚝뚝한 양반이 같이 일하는 인부들을 데려와 집을 수리하기 시작한 걸 보면 썩 마음에 차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 뿐인 것 같다. 그렇다고 예전 집이 그리운가? 그렇지도 않다. 예전 집은 이보다 더 최악이었다.
이전 집에서는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많았다. 부모님은 늘 그렇듯이 사이가 안 좋았다. 자주 다퉈서 그랬는지 집안 분위기는 해가 갈수록 더 차갑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름이면 온몸에 땀구멍이 다 열릴 듯이 더웠고 겨울이면 바닥에 발을 디디지 못할 정도로 시렸다. 엄마는 아끼고 아껴야 우리 삼 남매를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보일러 기름값이 점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엄마는 남들이 시도해 보지 못하는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밖에서는 우리가 이러고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집이 점점 낡아 가는 동안 우리가 이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집은 이제 제명을 다 해간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신호가 온 게 화장실이었다. 변기는 걸핏하면 막혔고 하수구는 시도 때도 없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삼킨 물을 되려 토해냈다. 그런 집이 완전히 맛이 갈 때까지 지지리 궁상처럼 살았다.
하지만 나도 엄마처럼 밖에서는 멀끔한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내가 꾸질꾸질한 모습으로 다니는 걸 싫어했다. 남들 눈을 많이 의식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아무리 현실이 거지 같아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적어도 남들처럼 멀쩡해 보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이 줄 그은 노트 위에 놀아나는 줄도 모른 채 어리석은 선택이나 하면서 빈 껍데기처럼 살았다. 결국에 이 모든 게 아무런 영양가 없는 삶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될 테지만 그때는 아직 때가 아니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하고 싶던 마음이 그토록 오래 내 속에 머물 줄 몰랐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선명한 느낌이 나를 완전하게 에워싸기 전까지 나는 잘못된 길을 꿋꿋이 걷고 또 걸었다.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고백하건대 느린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주 그럴듯한 거짓말쟁이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