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1부. 경주마, 낯선 마을에 가다
8. 고양이
며칠째 아랫집 고양이가 탈출해 아침마다 옥상을 달린다. 미친 고양이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기분이 더럽다. 아랫집 사람들의 변명은 고양이가 스스로 창문을 열고 도망치는 거라고 한다. 그럼 고양이가 그런 거니 나는 자동으로 이해하란 건가?
아랫집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보다 덩치가 크다. 삵을 실제로 본 적 없지만, 분명 삵이 저 정도 크기일 것이다. 아랫집 이모 말에 따르면 그 고양이는 무서우리만큼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 사람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분명히.
평생에 유일한 낙이 잠인 나는 단잠을 방해한 저 미친 고양이를 용서할 수 없다.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여긴 우리 집이야. 그니까 넌 내 허락 없이 옥상에서 뛸 수 없다고!’
1층에 사는 이모에게 냅다 성질을 퍼붓고 옥상으로 달린다. 네 이놈의 고양이와 오늘 기싸움을 한판 벌여야겠다. 나는 일부러 쿵쿵 발소리를 내며 나의 등장을 예고한다. 예전 집에서 걸핏하면 고양이들이 암내 내는 바람에 조용할 날이 없었던지라 고양이라면 질색팔색이다. 1층 사는 요물단지는 색깔도 시커먼 게 어둠 속에 있으면 눈깔만 번쩍여 더 불쾌하다. 나는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옥상 계단을 두 칸씩 내처 올라간다. 저기 바로 눈앞에 미친 고양이가 보인다. 역시 또 네 놈이구나!
나는 녀석을 똑바로 마주 본다. 녀석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본다. 눈빛에서 “왜 옴?”이라는 건방진 메시지를 읽는다. 나는 녀석을 제압하려 할 수 있는 최대한 목구멍을 벌려 하악질을 한다. 아침이라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겐 손과 발이 있다. 손가락을 치켜들고 꺼지라며 삿대질을 하고 발로는 옥상 바닥을 굴리며 미친 사람처럼 방방 뛴다.
‘이 집은 내 집이야! 당장 꺼져!!’
속으로 외치면 마치 녀석이 들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내적 포효를 병행한다.
고양이는 이 집에 미친 인간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의 지랄발광에 고양이는 빤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노려보지도 않고 경계하지도 않는다. 나는 녀석의 얼굴에서 “뭐 함?”이라는 표정을 읽는다.
나는 반응 없는 고양이에 더 열불이 터진다. 녀석의 태도에는 한걸음 물러섬이 없다. 한 번쯤 움찔거릴 만도 한데 한 번을 안 그런다. 이대로 밀릴 수 없다. 나는 녀석을 쫓아내기 위해 냅다 녀석에게 돌진한다. 그러자 녀석은 내 옆을 홱 지나쳐 그 길로 쪼르르 계단을 내려간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건 나뿐이다. 고양이는 쫄지 않았다. 내가 쫄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고양이에게 들켰다.
아, 자존심 상해.
그리고 얼마 후 나의 형편없는 지랄발광 때문인지 고양이는 집을 나갔다. 녀석은 1층 사는 사람들이 외출한 사이 방충망을 열고 제 발로 이 집을 떠났다. 가끔 집 주변에서 녀석을 닮은 시커먼 고양이가 목격되기도 했으나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그 고양이가 그때 옥상을 달리던 미친 고양이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내 느낌상 녀석은 살아있다. 어디서 굶어 죽을 놈이 아니다. 녀석은 원래 길냥이 출신이니 어쩌면 지금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