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수 Oct 20. 2021

패러디, 내 기분 상해죄 가능?

이거 묘하게 기분 나쁜데, 고소할 수 있나요?

요즘 오징어게임의 인기로, 정말 기발한 패러디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이처럼 패러디가 범람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작품의 인기가 많고, 여러 사람들이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참 잔인한데, 참 알록달록 아름다운-

그런데, 어떤 패러디들은 창작자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미묘하게 조롱하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죠. 패러디라는 것 자체가 웃자고 만드는 것이다 보니, 전혀 웃기지 않은 심오한 내 작품세계가 일순간에 희화화 되어버릴 수도 있구요. 이런 패러디는 창작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달갑지도 않을 수 있겠는데요. 패러디 제작을 저작권을 통해서 막을 수는 없을까요?


이러한 패러디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있죠. 바로 서태지의 컴백홈 패러디 사건인데요.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서태지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었어요. 우리나라 가요계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전설과도 같은 존재. 문화대통령으로까지 일컬어지던 언터처블한 존재였죠. 특히, 서태지의 '컴백홈'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갱스터랩, 사회비판적인 가사 등으로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수준높은' 음악으로서 인식되었었는데요, 


유 머스트 컴백- 홈-

그런데 '음치가수' 이재수가 이를 패러디해서 '컴배콤'을 불러버립니다. 이 '컴배콤'은 정말 제대로 못불러서 너무 웃긴 패러디로 대유행을 하게 됩니다. 웃기긴 참 웃긴데, 이게 너무 웃기다 보니, 서태지의 원곡을 듣고 봐도 자꾸 이재수의 그 모습이 떠올라 원곡이 얼마나 어둡고 멋있었는지는 어느새 휘발돼버리고, 이젠 비니 쓴 서태지만 봐도 이재수가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서태지나 서태지 팬들한테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겠죠.


급기야, 서태지는 저작인격권 침해로 이재수를 고소하게 되는데요. 

사람에게도 인격권이 있듯이,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에게는 특별히 내 저작물을 마구 변형시키면 기분 나쁘니까 그걸 금지할 수 있는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이 있거든요.


이러한 서태지의 고소에 대해서, 이런 패러디는 원작을 훼손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그 작품을 창작한 자나 이를 소중히 향유하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니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웃자고 하는 것에 뭘 그리 쌍심지를 켜냐, 이를 규제하면 앞으로 패러디 같은 유머는 위축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이 이재수가 서태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 인정했습니다. 이 판례는 이후 우리나라의 패러디 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 판례입니다. 


서울지방법원 2001. 11. 1. 선고 2001카합1837 결정

피신청인들이 이 사건 원곡에 추가하거나 변경한 가사의 내용 및 그 사용된 어휘의 의미, 추가ㆍ변경된 가사내용과 원래의 가사내용의 관계, 이 사건 개사곡에 나타난 음정, 박자 및 전체적인 곡의 흐름 등에 비추어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개사곡은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나타난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흉내내어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뿐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부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피신청인들은 자신들의 노래에 음치가 놀림받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거나 대중적으로 우상화된 신청인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등의 비평과 풍자가 담겨있다고 주장하나, 패러디로서 보호되는 것은 당해 저작물에 대한 비평이나 풍자인 경우라 할 것이고 당해 저작물이 아닌 사회현실에 대한 것까지 패러디로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 사건 개사곡에 나타난 위와 같은 제반사정들에 비추어 이 사건 개사곡에 피신청인들 주장과 같은 비평과 풍자가 담겨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피신청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사건 원곡을 이용하였으며, 이 사건 개사곡이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을 인용한 정도가 피신청인들이 패러디로서 의도하는 바를 넘는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개사곡으로 인하여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저하나 잠재적 수요의 하락이 전혀 없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 등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소명되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개사곡은 패러디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즉, 비평이나 풍자를 위한 수준높은 패러디이고, 원작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저하나 잠재적 수요의 하락이 없어야 타인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정당한 패러디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징어게임의 패러디들은 그 패러디들이 유행한다고 해서 오징어게임 드라마에 대한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넷플릭스 시청 수요에 영향을 준다는 등의 사정이 없어(오히려 더 홍보가 될 수 있죠) 자유롭게 패러디가 가능하지만, 컴백홈의 경우에는 서태지 원곡의 가치를 저하시킨 측면이 커서 저작인격권의 침해를 인정한 것입니다. 


결론은, 저작권자의 내기분 상해죄는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패러디를 제작하고 싶다면, 한번 저작권자의 입장에서 원작을 훼손하거나 원작의 잠재적인 수요를 저하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잘 살펴서 패러디를 창작하시기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