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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의 파시즘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 권력 엘리트들의 윤리의식 부재는 어디서 오는가?

by 너우니


현재 집필 중인 시리즈 '한국의 파시즘은 어디서 오는가?'에서 순서가 다소 뒤바뀌는 느낌이 들었지만, 새로운 단서 하나를 발견한 터라 처음으로 돌아가 한 편을 더 쓰고자 한다. 원래 이번 편에서는 조선 사회가 왜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다룰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제 우연히 흥미로운 관점을 접한 뒤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계획을 수정했다. 이번 편은 김누리 교수의 주장—경쟁 사회와 주입식 교육이 엘리트들을 파시스트로 만든다—에 약간의 근거를 보태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나는 그의 주장에 반은 맞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숙원이었던 장자(莊子) 공부를 하던 중 유튜브에서 '최진석의 장자철학'을 보게 됐다. 그곳에서 최진석 교수는 “왜 한국 사회의 지식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쉽게 부패하는가?”라는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릴 법한 질문에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다. 그의 관점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의 지식인은 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더 쉽게 부패하는가?” 이 질문은 꽤 흥미롭다. 여기에는 일본이나 미국이 우리보다 덜 부패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이 전제에 큰 이견은 없을 듯하다. 나 역시 이 점에서 오류를 찾기 어렵다. 최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지식을 스스로 생산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부패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문제없는 곳은 없지만, 우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다른 나라가 이미 해결한 노하우를 수입해 우리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지식’은 문제를 안고 있던 지역이나 국가가 그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해결책을 시도하며 얻어진 결과물이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해 해결한 적이 없고, 남이 만든 ‘지식’을 그대로 가져다 적용해 왔다. 이로 인해 공적 의식이나 윤리의식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를 직시하고 원인을 파악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윤리의식’이 싹튼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지식을 생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내 생각에 한국 사회는 문제 해결 능력에서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다. 십여 년 전, 낚시 보트를 알아보려고 한 공장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곳 사장과 나눈 대화에서 그는 배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도면은 호주나 유럽에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그 사장도 배를 만드는 데는 유체역학 같은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그걸 바탕으로 도면을 그리고 제작하는 거라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유럽 사람들도 처음부터 고급 수학 지식을 가지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아마 보트를 일단 먼저 만들어서 물에 띄운 다음, 여러가지 데이터를 시험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보트를 만들어 테스트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도면을 완성했을 것이다. 수학적, 공학적 지식은 그 시도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우리는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체역학 지식은 수학적 계산이나 이론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는 시도와 경험에서 나온다.


물론 이 주장만으로 한국 사회의 파시즘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 부분 공감이 가고, 퍼즐의 중요한 조각처럼 느껴져 덧붙여본다. 우리 사회가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며 윤리의식이 부족한 것도 결국 시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우리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도입한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창의성'뿐만 아니라 '윤리의식'까지 결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입식 교육은 우리 사회의 '힘있는 어떤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쉽게 체제전복을 노릴 수 있도록 '낮은 윤리의식'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말한 '자신들의 이익'은 '자신들의 아주 사적인 이익'을 말한다. 그들에게 서구 파시스트들이 가진 민족주의 또는 국가 같은 이념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체제 전복 세력은 사전적 의미의 '파시스트'라 보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나온 - 국가 권력을 장악한 다음 아주 사적인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 단순히 그냥 '패거리'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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