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관객과 연극을 통해 만나는 일을 한다고 하면 예상치도 못한 말들과 마주한다.
“아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군요,”
“돈을 벌어볼 요량이군요(잠깐의 유행같이. 현실은 돈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하시는 군요.”
“아기가 연극을 어떻게 봐요?!”
내가 느끼는 행복감과 짜릿함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데 말이다. 나는 나의 꼬마를 만나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는 다양한 층위에서의 경험과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나의 관점이 아닌 꼬마의 관점을 통해 다시 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나의 연극에도 수많은 변화가 생겼다.
온갖 사투를 벌이며 어렵게 어렵게 처음 올리게 된 영유아극 ‘치치타타’, 그리고 다시 발전시켜 만든 영유아극 ‘오!’. 아기 관객은 내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었고, 말이 없는 대화를 나누길 원했다.
한번은
공연이 끝난 뒤 21개월의 한 여자 아기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 아기는 나를 가만히 보았다.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아기의 모습에 처음에는 어른의 미소를 짓던 나도 천천히 아기처럼 그저 바라보게 되었다.
아기는 아무 행동도 아무 요구도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어떠한 감정도 어떠한 의미도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았기에, 나 또한 아기와 같은 눈으로 변했다. 우리의 오랜 눈 맞춤의 시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딘가로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너를 본다. 그리고 너도 나를 본다. 아무런 요구없이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바라봄으로써 나와 너는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온몸으로 느낄 뿐이다. 마치 내가 작은 너인 것처럼, 너는 커다란 나인 것처럼.
우리는 한참의 눈맞춤 뒤 가까워져 포옹했다. 작은 몸이 내게 폭 안겼다. 그 특별한 시간 덕에 나는 말로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과 짜릿함의 바다에 빠졌다.
아기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라, 공연에서 나왔던행위를 함께 하자며 손을 잡아끄는 아기도 있고,
이미 공연의 한 순간에 살고 있는 아기도 있다.
공연을 하면서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까지도 아기들은 제각각 일어나는 충동을 따라가고 그 충동을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에겐 특별한 시간이 벌어진다.
아기는 충분히 지금을 느끼고 표현하고 나누고자 한다. 그 투명한 열정을 나와 나누게 될 때 세상에 없는특별한 우리의 사이가 생겨난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이 없는 대화. 그 대화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짜릿한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대화를 아기 관객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