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One Battle After Another》리뷰|폴 토마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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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Battle After Another은 “연이어 계속되는 전투/투쟁”을 뜻한다고 나온다. 한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는 혁명이나 역사적 전투의 의미일 것이다. 영화에 대해 정치, 사회적 극단과 양극화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글들이 많지만 나는 항상 철학적 사고로 초점을 모은다.
정치적, 사회적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구조로 영화를 바라보았다. 영화에서 보이는 전투나 혁명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를 인간이 만들었으니 인간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나는 인간이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존재론적 조건의 은유로 생각했다.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과거의 혁명 활동을 은퇴하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밥은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위해 ‘세상과의 전투’ 대신 ‘자기 안의 전투’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내면적 균열을 겪는 밥은 약물에 의존하고, 딸과는 거리감이 생기고, 과거 혁명시절 암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좌절의 모습을 보인다. 밥은 외부 전투에 가담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퍼피디아의 눈에 들고 싶어 하고,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혁명이라는 외부 전투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윌라를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내적 전투에서 찾게 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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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밥과 현재의 밥을 이어주는 존재는 딸 윌라다. 타자가 만든 구조에 의지하거나 제도적 전투가 아니라 딸이 살아남아야 하는 방식을 위해, 딸이 스스로 자기 삶의 길을 택하고 싸울 수 있게 지키기 위한 전투가 밥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티븐 록조(숀 펜)는 오직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조직과 국가를 의인화한 인물로 보인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투는 외부를 향해 있다. 강력한 내면의 상징인 핏줄까지 부인하면서 말이다.
자동차 추격전이 압권인 것은 굴곡이 심한 도로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내면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수많은 내적 전투가 치러져도 진정한 자신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끊이지 않는 내면과 외부의 전투를 윤회하며 삶을 이루어간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삶 자체가 반복되는 싸움의 이미지처럼 보였다. 내면의 자아와 외부의 상황 속에서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든 아니든 모든 상황이 끝나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을 때가 많다. 자기의 과거와 화해하지 못했던 밥이 딸 윌라를 위해 보여준 행동은 자기 존재를 스스로 증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화해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윌라를 웃으며 배웅하는 밥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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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체제와 싸우던 사람이지만, 딸이 생긴 이후로는 조용히 살고 싶은 인간이다. 하지만 그는 싸움을 멈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싸움 안에 있었다. 영화는 정치, 사회적 분열(혁명)과 권력, 난민 문제의 양극화된 구조를 제공하지만 사실은 인물들의 내면적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밥은 공적 투쟁의 세계와 사적 삶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혁명가와 권력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그 체계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흔들리고 분열되는가를 알려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외부 권력과의 싸움이 멈추자 그 싸움은 밥의 내면으로 들어왔고 스티븐 록조의 등장으로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혁명과 권력, 저항과 억압이라는 세계는 단순한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쳐야 하는 거울이자 공간이다. 스티븐 록조처럼 사회의 그림자로 살 것인가, 분열된 존재의 공간으로 과감히 들어가 싸울 것인가도 역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외부가 강력할 때가 더 많다. 스티븐 록조는 삶도 죽음도 사회의 그림자로 전락해 버렸지만.
은둔과 망각의 상태에서 자기만의 세계로 자기만의 색깔을(영화에서는 아버지) 한 채 나선 밥의 선택이 눈물겹도록 감동을 주는 이유가 자기 자신과 화해한 자의 전투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분열과 균열로 터지고 봉합한 자리가 많겠지만, 밥은 과거의 소심한 혁명가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끝없는 내면의 전투를 치르고 난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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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싸움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전투는 세대를 건너, 딸 윌라의 삶에서 또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 밥이 세상을 등지거나 침묵을 선택하더라도, 싸움의 흔적은 윌라의 선택과 몸짓 속에서 다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영화 후반부의 도로 장면에서 밥이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드는 순간은 단순한 부성애의 발현만으로 볼 수 없다. 인간은 싸움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싸우지만, 그 싸움 자체가 이미 전승의 형식이 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과거 조상과 현재 후손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전투는 폭력이 아니라 ‘책임’으로 변한다.
딸을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 밥의 몸짓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윤리적 반응처럼 읽힌다. 싸움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이 아니라 멈출 수 없지만 서로를 지키려는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때 밥과 윌라 사이는 회복된다. 밥과 윌라는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같이 한다.
자동차 추격전은 끝나지 않는 윤회처럼 인간의 삶을 보여주지만, 내가 서 있는 땅에 발을 딛고 제대로 서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그 용기는 타자를 향한 의심이나 폭력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믿음과 구원에서 온다.
스티븐 록조와 퍼피디아가 보여주는 의심과 폭력, 집착에는 윤리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그 속에서는 구원은 차치하고 사랑조차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딸 윌라는 자기의 생부를 알게 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밥을 용서하고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밥과 윌라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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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 《One Battle After Another》는 멈출 수 없는 싸움 속에서 인간이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자동차 추격전이 펼쳐진 도로처럼 이어지는 일상은 세상을 향한 전투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향한 전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싸움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싶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밥의 마지막 선택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싸움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는 결단이었다.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싸움을 감당하는 태도 속에서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으로 완성되었다.
영화 제목 ‘One Battle After Another’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살아 있다는 것, 하루하루가 또 한 번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이나 전투로 끝내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으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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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 추격전 : 내면의 질주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자동차 추격전이다. 끝나지 않는 전투를 암시하듯 앞 상황(미래)을 알 수 없는 도로가 끝없이 펼쳐진다. ‘산 넘어 산’이라는 관용어처럼 자동차 추격전은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삶, 그래서 두려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윌라처럼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마주 보고 멈출 수 있다. 16세의 용기와 아빠 밥에 대한 믿음이 시청각적으로 집합된 장면이다. 속도가 아니라 혼란의 미학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감독의 연출이 놀랍다.
2. 연기력
누구 하나 부족한 면이 보이지 않는 연기력에 박수를 보낸다. 디카프리오는 뜻밖의 웃음을 선사하는 밥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또한 딸을 향한 사랑이 지극한 부성애로 감정을 끌고 가기에 충분하다. 밥이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상황에서 블랙코미디 요소가 드러난다. 어쩌면 밥의 모습은 전투에서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인간성을 지키려는 본능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티븐 록조 역의 숀 펜! 눈빛, 얼굴 근육까지 연기 그 이상을 선사한다. 숀 펜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영화는 관객을 압도한다.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와 가라데 도장 사부 세르히오 생카를로스(베니시오 델 토로), 윌라, 하다못해 윌라의 친구들까지도 배우들의 호흡과 조화가 영화를 빛나게 만든다.
3.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투와 음악적 몰입감
영화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관객을 쉬게 할 마음이 없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라는 제목처럼 멈추지 않는 서사의 전개 속도가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가 몸을 얼마나 웅크리고 봤는지 알게 되었다. 시간이 늘어나는 듯한 롱테이크,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 교차 편집으로 이어지는 속도감과 액션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음악 또한 영화의 몰입을 완성한다. 음악이 영화 속에서 튀지 않고 심장박동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음악으로 끌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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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혁명과 전투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나는 결국 인간의 내면을 향한 여정으로 보았다. 관객은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으려는 몸부림을 밥 퍼거슨으로 전달받는다. 영화는 끝났지만 내 안에서 또 다른 영화가 재상영되고 있다. 그 스크린에는 내 인생이 펼쳐지고, 인생에서 나를 지켜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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