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산상」과 「양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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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을 선명하게 그려놓았다. 선경후정(先景後情)!
1~2연의 내용은 산에서 내려다본 세상 풍경을 묘사하고 있어서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런데 3연에서 ‘텐트 같은 하늘이 무너져’라고 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졌다는 표현에 잠시 머문다. 보통 웬만하면 ‘하늘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19세 청년이 하늘이 무너진다니!
또 하늘이 ‘텐트’ 같다고 했다. 하늘을 약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던 아틀라스처럼 조선의 하늘을 지키고 싶었을까? 산상(山上)에는 하늘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시인은 답답한 마음을 산에 올라가서 풀었던 것 같다. 언덕을 좋아했던 시인이니까! 나는 20대 때 우리나라 유명한 산은 거의 다 다녔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는 건 오르고 내리는 일과 관련된 이유가 아니다. 산에 오르면서 내 호흡소리를 듣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또한 내 속도와 보폭으로 올라야 힘들지 않다. 거기다 계곡물 소리! 바람 소리! 난 이 소리가 좋다. 그래서 산에 오른다.
윤동주 시인이 산에 올라 사색하는 마음을 나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등산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을 마주 보기 위한 방법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올랐던 산과 내가 올랐던 산은 다르겠지만 산에서 들리는 소리를 좋아한 마음은 믿고 싶다.
뒷짐 지고 내 보폭으로 천천히 산에 오르고 싶다. 산상(山上)에서 하늘이 텐트 같은지 한번 보고 내려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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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쓴 시들은 대부분 송몽규를 걱정했던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슬프다. 시인은 아픈 마음을 ‘양지쪽’으로 앉아 달랜다. 그래도 ‘양지쪽’에는 ‘태양의 손길’도 있고 어린아이들도 볼 수 있다.
‘뉘 땅인 줄 모르는 애 둘이’라는 시구에서 아이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면서 그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나이가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마냥 어린아이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순수함은 간직하되 책임감을 배우고 자립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온전히 서서 다른 사람과 나란히 걸을 수 있어야 한다. 힘이 있다면 옆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를 넘어서 타인을, 공동체를 향해 가야 한다.
4연에 잠시 머문다.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있다. 관계에도 있고 자기의 내면에도 있다. 하루에도 자신의 마음을 수없이 흔드는 무언가가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환경이나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하는 일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수필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 연암협 골짜기에 있을 때 자기 마음 상태에 따라 물소리가 모두 다르게 들렸다고 했다. 물소리 하나를 듣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다르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날은 빗소리가 듣기 좋고 어떤 날은 빗소리가 시끄럽고 어떤 날은 빗소리가 우울하다.
우리는 사물에 투영되는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하면서 외물에 매여 산다. ‘엷은 평화’가 아니라 온전한 마음으로 자립해서 그 마음이 숲을 이루어 생명을 지켜내고 길러내는 온기가 되기를 ‘양지쪽’에 앉아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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