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과 나날》 리뷰 | 미야케 쇼 감독
*리뷰에는 결말도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영화를 감상하신 후 리뷰를 읽어주십시오.
—-
---
영화 관람 후 영어 제목부터 찾아보았다. “Two Seasons, Two Strangers”. 한국어 제목이 확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 제목이 영화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준다고 생각했고, 영화에 대한 이해도 쉬웠다. 두 계절과 낯선 두 사람이라는 말은 이 영화가 계절의 대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의 대비를 보여주려 한다는 예고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여름과 겨울의 감상 쪽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쪽으로 감상하려 했다.
---
영화는 하나의 자리를 더 배치하면서 삶의 층을 위로 끌어올린다. 여름은 ‘이’가 머리로 사는 삶을 보여주고, 겨울은 이의 몸이 삶 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은 두 모습을 동시에 목격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감독은 관객이 단순히 서사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삶의 두 양식이 서로 비추는 거울을 세 겹으로 보게 만드는 장치를 선택했다. 나는 이 영화의 3중 구조를 성찰의 장치로 읽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의미로 정렬하려는 충동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가’다. 이 질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주인공 ‘이’의 상태이며, 계절은 그 상태를 감각으로 번역해 보여주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
‘이’는 몸도 아프고 글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로만 사는 ‘이’는 내면을 소진하며 서사와 플롯을 만들어낸다. 노트북이 아닌 연필로 한 글자씩 써 나가는 ‘이’는 소란스러운 마음을 동적인 영화 대본으로 환원한다.
그런데 겨울로 여행을 간 ‘이’는 아무것도 정렬되지 않은 상태에 놓인다. 결과와 해석을 지우고 멈춘 상태에서 계획 없는 우연이 만들어낸 삶을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제야 글이 밖으로 나온다.
같은 인물의 시간인데도 여름에는 만들어내는 삶이, 겨울에는 살아내는 삶이 전면으로 온다. 영화는 두 명의 낯선 사람처럼, 계절과 온도가 갑자기 바뀔 수도 있는 한 사람의 내면을 화면으로 보여준다.
---
‘이’가 쓴 영화 대본은 여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잉적인 생동감이 오히려 죽음에 닿아 있다. ‘이’가 쓴 영화는 여름이 소란스러워 보이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그 활기는 채워지지는 않고 소비되기만 한다. 여름이 만들어내는 강한 빛, 사건의 밀도는 살아 있다는 표정이 많아서 오히려 삶이 얇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겨울은 소리조차 먹어버리는 눈, 침묵과 어둠으로 죽은 듯 보이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 강하다. 결핍과 침묵이 오히려 삶에 가깝다. 멈췄을 때 살아 있는 것들이 자기 자리를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겨울 여행에서는 말이 사라진 자리에 세계가 설명이 아니라 존재로 남는다. 정중동靜中動, 살아 있음은 요란함이 아니라 지속이라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겨울 여행에 있다.
즉, 여름은 사건이 많아지는 계절이 아니라 의미를 급히 만들다가 삶을 놓치는 계절로, 겨울은 쓸쓸한 계절이 아니라 의미를 유예하며 삶을 되찾는 계절이 된다. 나는 영화 속 두 계절을 보면서 생은 크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지속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
영문 제목의 “Two Strangers”를 떠올리면, 이 영화의 낯섦은 타인에게 있지 않다. 낯선 사람은 결국 내 안의 다른 두 속도다. 하나는 머리의 속도—모든 것을 정렬하고 의미로 환원하려는—이고, 다른 하나는 몸의 속도—정렬되지 않은 것을 견디며 우연을 받아들이는 속도—다.
여름의 소란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속도가 만들어낸 과잉이다. 그 과잉이 삶을 얇게 만들 때, 죽음의 냄새가 스민다. 반대로 겨울의 침묵은 삶이 의미 이전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죽은 듯 보이지만, 그 정지 속에서 오히려 생은 자기 자리를 회복한다.
주인공 ‘이’가 돌아가는 눈길 위를 걸을 때 찍힌 발자국처럼, 눈 속으로 빠지는 발걸음처럼 삶으로 옮겨놓는 힘은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먼저 도착한다. 시가 그렇듯, 이 영화는 ‘무엇’보다 ‘어떻게’를 남긴다. 여름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방식이고, 겨울은 삶이 말을 만들기 전의 침묵을 오래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두 계절은 대비가 아니라, 언어가 세계를 붙잡는 방식의 차이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의 정답이 아니라, 의미가 생기기 직전의 떨림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눈이 소리를 먹고, 멈춘 장면들이 사진처럼 보여질 때, 살아 있음은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지속’이다. 의미는 앞에서 길을 안내하지 않고, 살아낸 뒤에야 발자국처럼 드러난다. 무엇을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견뎠는지가 남을 때 삶의 근육은 두꺼워진다.
#여행과나날 #심은경 #미야케쇼감독 #일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