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벚꽃 동산』 리뷰 | 안톤 체호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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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연극 〈벚꽃 동산〉을 반복해서 관람했고, 공연을 보기 전에는 원작을 다시 읽곤 했다. 〈갈매기〉는 2018년 영화로 먼저 접한 뒤 원작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책꽂이에 조용히 꽂혀 있던 도서 『벚꽃 동산』(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 희곡선집/오종우 옮김/열린책들)에 수록된 여섯 작품을 재독하게 된 이유가 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바냐 아저씨〉를 공연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는 차후에 올릴 예정이다.)
작가가 활동했던 시대(1880년~1904년)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거장들의 영향이 남아 있었고, 사실주의 계열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회적인 문제나 도덕,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문학이 많았으며 1890년대부터는 상징주의적 작품들도 등장하던 시기였다. 특히 희곡의 주류는 멜로 드라마, ‘잘 짜진 연극’이 강세였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신념, 감정, 주장을 비교적 명료하게 말한다.
반면 안톤 체호프의 작품은 당대 유행하던 작품들의 형식과 다르다. 체호프의 단편과 희곡 속 인물들은 거대한 사건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배치되어 있지 않다. 사건들은 과거나 무대 밖에 밀려나 있고, 무대 위에는 사건이 남긴 잔열(관계의 금, 피로, 부채, 체면)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인물들은 각자 모순된 말만 늘어놓으며, 문제도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붙잡힌 채 현재를 흘려보낸다.
또 동시대 작품들과 달리 체호프의 희곡 속 인물들은 딴소리를 하거나 일상 대화,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 한다. 선과 악을 판정하지 않고 모두가 어느 정도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상태로 둔다. 교훈이나 결말을 정리하기보다 잔상을 길게 남긴다.
그래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은 당대보다 21세기인 현대와 더 닮아 있다. 마치 현대인의 삶을 예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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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희곡(그리고 단편 소설)은 역설적이다. 웃음이 존재하지만 웃을수록 더 서늘하고 냉혹한 삶의 증거로 남는다.
『벚꽃 동산』에는 단막극 세 편, 장막극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청혼>,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기념일>은 단막 웃음극이고,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은 4막으로 이루어진 장막극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이 “웃음극”이라고 했지만, 나는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작품을 관통하는 ‘역설’이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말은 관계의 거리를 더 벌리는 장치다. 말은 관계의 다리가 아니라 벽이 되고, 연결이 아니라 분리의 도구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역설이 웃기기만 하지 않다는 점이다. 역설은 씁쓸하고 냉혹하며, 서글프고 서늘하다. 체호프의 작품에서 웃음은 해소가 아니라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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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로모프는 이웃 지주 추부꼬프의 딸 나딸리야에게 청혼을 하러 온다. 그런데 정작 청혼을 꺼내기도 전에 ‘볼로지 목초지’ 소유권으로 말다툼이 시작된다. 잠시 화해하는 듯하다가도 이번에는 서로의 사냥개 품종을 두고 싸운다. 로모프는 흥분해 심장에 무리가 오고, 나딸리야는 끝장을 보려 든다.
이들의 대화는 청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존심의 전쟁에 연료만 준 셈이다. 작품이 웃음을 끌어내긴 하는데, 웃음의 엔진이 사소함에 분노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어리석은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씁쓸하게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이 작품은 제목부터 역설이다. 똘까초프는 비극 배우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가족과 지인들이 하는 부탁, 심부름이 누적되며 인간을 과장된 절규로 몰고 간다. 게다가 친구 무라슈낀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어긋남 자체가 웃음을 만든다.
똘까초프는 밤길이 위험하니 권총을 빌려 달라고 하지만, 사실은 휴양지 생활의 ‘심부름 지옥’에 질려 폭발 직전이다. 그런 똘까초프에게 무라슈낀이 자기 심부름을 부탁한다. 결국 똘까초프는 “피다! 피!”를 외치고, 무라슈낀은 친구가 미친 것같다며 어리둥절해한다.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이 사람을 연기하게 만드는 사실 때문에 웃음은 서늘해지고 만다.
<기념일>
여기서 “기념”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망치는 역설로 작동한다. 신용조합 창립 1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회장 쉬뿌친은 체면치레에 들떠 있다. 반면 회계사 히린은 기념 보고서를 밤새 쓰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런데 쉬뿌친의 아내와 민원인이 등장하면서 사무실은 난장판이 된다.
등장인물은 모두 자기 얘기만 하고 타인의 말은 듣지 않는다. 집착이 심한 사람들이 자기 말만 늘어놓는 모습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비틀어지는지 보여주는 코미디다. 결국 기념일은 축하가 아니라 업무와 인간관계가 폭발하는 재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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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이 작품에서는 예술과 사랑에 대한 말이 넘친다. 그러나 예술과 사랑을 말할수록 인물들의 고립은 깊어지고 사건은 역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고백이 상처로 남고, 인정 욕망은 관계를 갉아먹는다. 인물들은 누구 하나 진실한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거짓된 삶이 이어지는 상황과 그들의 대화 자체가 역설이다.
소린 영지 별장을 방문한 여배우 아르까지나는 유명 작가 뜨리고린을 연인으로 데리고 온다. 그녀의 아들 뜨레쁠레프는 실험극을 통해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실패한다. 실험극에 참여한 니나는 뜨리고린에게 마음이 기울고, 뜨레쁠레프는 니나의 사랑을 갈구한다. 인물들이 끊임없이 말하는 예술과 사랑은 모두 거짓처럼 들리고 진정한 예술과 사랑은 삶에서 찾을 수 없을 듯하다.
뜨레쁠레프가 흰 갈매기를 사냥해 니나에게 던지는 장면은 그의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니나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좌절, 실패한 예술적 야망을 죽은 갈매기로 보여준다. 한편 순수하고 자유로운 갈매기 같던 니나는 뜨리고린을 만나며 처참하게 짓밟힌다. 뜨리고린은 죽은 갈매기를 보고 단편의 소재로 삼는다. 생명의 무게가 아니라 자기 예술의 소모품 혹은 지나가는 흥밋거리로 여긴 것이다. 그에게는 니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갈매기는 자유와 예술을 향한 동경을 뜻하는 동시에, 타인의 이기심과 현실 때문에 허망하게 꺾이는 순수한 존재의 운명을 상징한다.
<바냐 아저씨>
바냐와 조카 소냐는 시골 영지를 관리하며 그 수익으로 소냐의 아버지(교수)를 뒷바라지해 왔다. 그런데 교수가 젊고 아름다운 아내 옐레나를 데리고 내려오면서 균형이 깨진다. 영지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옐레나에게 흔들리고, 관계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교수는 영지를 팔아 투자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고, 바냐는 “내 인생을 착취했어.”라고 외치며 폭발한다. 교수를 향해 총을 두 번이나 쏘지만 빗나가고 교수와 옐레나는 떠나버린다.
이 작품은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헛된 시간이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삶을 바쳤다고 믿었던 대상(권위, 이상, 지식)이 무너졌을 때 남는 건 회한과 분노지만, 그 분노가 폭발해도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소냐는 바냐 아저씨에게 “사는 거예요.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이 말은 구원이라기보다 노동과 인내로 겨우 버티는 산자의 숙명처럼 들린다.
그리고 여기서 소냐가 사랑하는 인물은 의사 아스뜨로프다. 그러나 그 사랑 또한 세계를 바꾸지 못한 채 남는다. 결국 바냐 아저씨도 소냐도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사소한 존재로 남는다.
<벚꽃 동산>
지금까지 연극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이 작품은 여운이 굉장히 길게 남는다. 벚꽃 동산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이미 과거의 추억으로 존재한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현실적 해법도 찾지 않는, 체면만 중시하는 인물들의 심리가 이어진다.
벚꽃 동산 영지를 소유한 이들은 경매와 개발의 언어로 말하는 로빠힌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인물들의 대화는 결정을 미루고 연기하며, 선택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오히려 추억에 더 집착한다.
그러나 시대는 조용히 사람들을 통과해 버린다. 결국 상인 로빠힌은 영지를 사들이고 벚꽃 동산을 베기 시작한다. 모두가 떠나고 늙은 하인 피르스만 남겨진다. 멀리서 들리는 나무 베는 소리와 쓰러진 피르스의 모습은 한 세계가 끝났다는 점을 알려준다. 사생활이 끝나면 한 시대가 종결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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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희곡에는 ‘사이’라는 단어가 자주 존재한다. 사건이나 대화보다 침묵으로 생활의 압력을 만드는 작품이다. 인물들의 말은 자기 마음을 반대로 드러내거나 참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와 관객은 말 사이를 읽어내야 한다. 사생활의 사소함이 시대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결은 현대 작품이나 영화에서 자주 봤다. 무의미한 말은 많고 해결은 없으며 사소한 것들이 삶을 누르고, 큰 사건은 이미 지나갔는데도 그 이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방식. 체호프의 희곡은 그 점에서 현대적이다. 그의 희곡이 지금까지도 재생산되는 이유일 것이다.
체호프의 희곡은 대화로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대화는 부적응의 기록이다. 웃음은 온기를 주지 않고 현실의 온도를 서늘하게 만든다. 영웅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사생활의 사소함이 드러날 때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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