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죽은 사람은 있는데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다음 소희》 리뷰 | 감독 정주리

by 데미안에너지

불편한 영화지만 봐야 할 영화


영화는 불편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아직도 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영화가 서스펜스나 스릴러는 아닌데 긴장감을 가지고 끝까지 보게 된다. 이 긴장감은 감독의 연출력이라고 생각한다. 제목도 영화의 긴장감도 감독의 역량에서 오는 영화였다. 그리고 감독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두나 배우가 맡은 오유진이라는 경찰을 통해 전해졌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약자들을 궁지로 몰아간다. 아이러니한 점은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자신은 그 약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자신은 강자 또는 강자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다음 소희는 자신이 아니라고 믿으며, 소희 다음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자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우리는 다음 소희와 같다. 대기업도 소희 다음을 채워줄 사람이 줄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회사는 곤란하면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과 소희 같은 직원은 다른 종에 속한다.

---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며 사는 현대사회


《오징어 게임》은 상상적 작품이지만 직설적인데 반해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간접적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우리는 소희와 같은 삶에 관심이 있는가? 오히려 《오징어 게임》처럼 비현실적인 삶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더욱더 봐야 한다. 소희의 죽음에 이 세상을 사는 어른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모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해서.


이런 구조를 만든 책임,
가해자로서 사과하지 않는 책임,
무관심한 책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책임…….


아무도 이 영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워서도 안 된다. 구조는 쉽게 바뀌지도, 바꿀 수도 없지만 견고해진 구조는 더 많은 소희의 생명을 앗아갈 것이다. 이미 앗아갔고 현재진행형이며 미래 진행형이다.

---

모두가 가해자


약자는 억울하게 1차 죽음을 맞고,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음해와 왜곡으로 2, 3차 죽는다. 이 영화는 소희의 죽음이 1부, 소희의 2차 죽음이 2부로 나타난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소희가 계속 실패하는 춤 동작이 있다. 그 동작을 통해 소희의 삶이 아주 불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경찰에서 소희 핸드폰을 저수지에서 찾는다. 핸드폰에 남은 마지막 동영상. 소희가 자살하기 전, 자기 핸드폰에 있는 내용을 전부 지웠지만 딱 한 영상만을 남겨두었다. 그 영상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죽은 소희의 핸드폰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영상에선 소희가 그 춤 동작을 성공시켜 기뻐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 같은 장면이고 같은 시간에 찍은 걸 감독의 편집으로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희는 안 되는 동작을 계속 도전해서 결국은 해냈지만, 감독은 그 모습을 소희의 죽음 이후 형사의 눈으로 보여준다. 춥지 않아야 하는 아이들이 죽어간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 아이들은 조금만 기회를 주면 소희가 춤을 완성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몫을 해내며 살아갔을 것이다.

---

어른은 무엇을 했는가


이 영화는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피해자인 아이가 죽었는데도 어른들은 자기 살길만 찾고 무관심하다. 심지어 소희는 죽어 마땅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생명도 죽어 마땅한 생명은 없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은 딱 죽었으면 하는 인간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훌쩍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만 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분노했고 미안했고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소희는 바로 우리 모습이다. 자기 자식, 손녀, 손자의 모습이다. 회사에서는 소희 다음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지만 소희 다음이 자신이 아니고 자기의 자식만은 아니라고 나와 상관없다고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가해자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다음 소희》도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사회의 구조를 제대로 마주할 것을. 회피하지 말고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마주 보고 분노하라고.

누가 세상을 바꿔주는 게 아니다. 내가 한다고 세상이 바뀐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왜 하느냐? 나라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진다. 역사는 그래왔다. 지금도!


다음소희.pn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

#다음소희 #정주리감독


✍ 다음 연재 – 『GIRL, GROW, GLOW』 연재(다섯 번째 도서 공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