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 아이들』 | 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아씨들』은 1부와 2부로 되어 있고, 『조의 아이들』은 3부와 4부로 구성된다. 3부는 『작은 신사들』, 4부가 『조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내가 구매한 책은 『조의 아이들』로 3부와 4부 합본이다.
어렸을 때 봤던 《작은 아씨들》은 일본애니메이션을 더빙한 작품이었고, 동화책으로 읽었던 터라 『빨간 머리 앤』처럼 공상하기 좋아했던 어린 나는 이 작품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2020년에 1부와 2부 합본을 읽고 영화들을 함께 본 뒤, 2023년이 되어서야 3부와 4부를 읽게 되었다. 그동안 아프고 바빴다. 잠옷을 입고 하루 종일 뒹굴면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는 호사를 누렸다. 텔레비전은 원래 없기 때문에 조용하게 1000쪽이 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서 아쉬울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3부와 4부인 『조의 아이들』이 훨씬 좋았다. 『작은 아씨들』에서 성장통을 겪은 인물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가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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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간이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진정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지, (책에서는 특정 종교가 등장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한 힘을 이끌어주는 역할까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과 용기까지 작가는 중요한 주제들을 사랑스럽지만 문학적으로 펼쳐나간다.
3부는 플럼필드 학교에서 성장하는 소외되고 어린 남학생들에게 조와 프리츠가 보여주는 헌신적이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부부의 사랑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어떤 힘으로 나타나는지는 4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분법적으로 인물들을 다루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개연성 있게 진행되는 사건들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조는 남녀공학을 주장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돕는 존재라는 철학을 몸으로 보여 준다. 남편인 프리츠 또한 가부장적이지 않고 신앙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가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진심으로 감동을 전한다.
인물들은 작가가 창조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게 된다. 1860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며 재해석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 느낄 수 있다. 150년이 지났지만 작품에서 다루는 교육과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모양새는 달라진 것이 많지만 여전히 차별은 다른 형태로 강화되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한국은 다방면에서 차별이 심하게 존재한다. 그래도 내가 어릴 때보다는 상당히 나아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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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각자의 마음에 다양한 관점과 태도로 새겨진다. 어린아이의 삶에서 부모가 아니더라도 진심 어린 따스함과 사랑을 받은 기억은 어른이 되어 많은 실수를 하더라도 한 인간을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뿌리만 죽지 않는다면 모든 식물은 다시 싹이 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후 성장하는 것처럼.
사실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작가의 비유와 묘사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나 영국의 문학가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시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또한 유머와 편견 없음과 따스함이 가득한 플럼필드는 미소를 짓게 만든다. 물론 어려운 일과 거센 풍랑도 맞게 되지만 네 자매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통해 조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건들을 해결한다.
작품을 읽으면 조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조는 어머니에게 배웠던 지혜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면서도 작가다운 조의 창의성을 함께 섞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대사회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진실한 말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면서 무례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말하는 아이들이(어른들도) 이 작품이 주는 따스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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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조의 아이들』에서 여성의 역할과 권리에 대해 『작은 아씨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당시 미국 여성들이 지금의 위치를 얻어내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긴 싸움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아씨들』이 한 가정의 교육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려준 작품이라면, 『조의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라는 것을. 신분, 성별, 빈부 차이, 할 것 없이 모든 존재는 서로를 돕는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한다. 인간이 아닌 자연까지도 서로 돕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준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댄이 자연에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결국에는 사람을 통해 살아갈 힘을 갖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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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을 때 시대적인 제약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신기하게도. 작품이 전하는 따스함과 사랑, 믿음과 선한 영향력은 현재를 넘어 미래 사회에서도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내면의 선한 힘과 성찰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독신으로 살았던 한 명의 여성 작가가 미래를 내다보며 펼쳐내고 있다. 강요하지도 않고 편안하게, 따스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유머를 가지고서.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있는 세상에서 모든 존재는(모든 자연 포함)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진실을 위한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 힘인지 깨닫게 한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플럼필드에 사는 부부가 어떻게 이끌었는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말과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어린 학생들은 『작은 아씨들』을 더 좋아할 것이다.(어릴 때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성인들에게는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 두 작품을 선택이 아니라 필독을 권한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삶의 교훈들을 따라가다 보면 선한 마음을 품게 도와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성찰을 해야 하고, 공동선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 작품이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P.S. : 『GIRL, GROW, GLOW』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제 글을 읽고 고전명작을 다시 찾는 일이 생기면 기쁘겠습니다. 저에게 추억을 가득 안겨준 작품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올렸습니다.
연재 제목처럼 GIRL, GROW, GLOW한 시간이었기를 빕니다~.
『GIRL, GROW, GLOW』 주제에 맞는 책을 만나면 연재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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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메이올컷 #조의아이들 #작은아씨들
✍ 다음 연재 - 영화 《에프터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