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를 향하여』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 이가형 옮김
소름소름소름!
왜 제목을 『0시를 향하여』라고 했을까?
0시라는 게 있을까?
작품을 끝까지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작품의 영문 제목 『towards zero』가 궁금해서 인터넷부터 검색해 봤다.
* towards (전치사) ― ~을 향하여, ~을 지향하여, ~을 목표로 하여
* zero (명사) ― 0, 영점(零點), 아무것도 없는 상태, 출발점, 기준점
영문 제목 『towards zero』은 ‘0을 향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향하여’로 직역할 수 있다. 작품과 표면적으로 연결한다면 ‘결말이나 시작점을 향해 움직인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을 이면적으로 생각해 보면 작가는 인간의 죽음을 0으로 설정한 듯 보인다. 죽음은 인간의 시간과 생명, 삶이 모두 멈추는 지점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트레페넌스 대령의 죽음도 0을 상징할 수 있고,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도 0으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이 타인을 살해하는 심리가 내면에서 다층적인 과정을 거치겠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그 순간이 바로 제로일 수 있다. 제목이 『0시를 향하여』니까 인간의 심리가 제로인 지점을 향해 가는 내면의 붕괴를 의미한다. 또한 살해라는 것은 윤리적 붕괴를 알려준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그 지점, 더군다나 충동적인 범죄가 아니라 완벽하게 설계한 살인 시나리오를 완성한 지점이라는 의미로 제로zero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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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어떻게 살인을 진행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작품은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자기 자신조차도!
자본주의의 등장은 인간의 내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정신적인 고통을 심화시켰다. 직접 폭력인 살해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간접 폭력이 살인을 일으키는 예가 허다하다. 다수가 한 명을 또는 소수를 왕따로 만드는 폭력,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합리화로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폭력 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지. 특히 사회적 타살을 우울증이 초래한 자살로 취급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다층적인 내면으로 진화했을 텐데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면에서는 퇴화를 거듭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적 방황들이 환경이라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 『0시를 향하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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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정도의 긴장감과 복선의 치밀함 그리고 퍼즐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 인간에 대한 심리 묘사 등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작품이다.
단, 번역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을 만하다. (영어 번역투의 문장이 눈에 띄었지만 넘어갈 만했다.)
왜 명작인지, 작가가 스스로 작품 열 개를 추려서 말할 때 왜 이 작품을 포함했는지 알 것 같다. 추리소설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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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요약(해문출판사)
트레브스 노인 : 경험이 많고 노련한 80세쯤 된 변호사. 과거의 살인사건에 대한 뚜렷한 기억 때문에 살해당한다.
앤드류 맥휘터 : 자살 기도를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다. 몇 달 뒤에 똑같은 곳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여자를 구해 준다.
배틀 : 런던 경시청의 총경. 휴가 중에 우연히 사건을 맡아, 그의 독특한 수사 방법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네빌 스트레인지 :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한 일류 테니스 선수. 만능 스포츠맨이며, 또한 제법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케이 스트레인지 : 네빌의 두 번째 부인. 붉은 머리에 어울리는 다혈질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
카밀라 트레실리안 : 몸이 쇠약하고 고집이 센 노부인. 걸즈 곶에서 벌어지는 묘한 삼각 관계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메디 올딘 : 트레실리안 노부인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희생심이 강한 여자. 걸즈 곶에 초대된 손님들의 중재 역할에 야릇한 재미를 느낀다.
오드리 스트레인지 : 네빌 스트레인지의 첫 번째 부인.
토머스 로이드 : 말이 없고 침착한 사람. 겉으로는 무관심한 체하지만 오드리에게 정열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
테드 라티머 : 케이의 오랜 친구인 잘생긴 청년. 언제나 케이의 주위에서 떠나지 않는다.
제임스 리치 경감 : 걸즈 곶 살인사건을 맡은 배틀 총경의 조카. 배틀 총경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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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위한 마중물!
사유 1 : 진짜 ‘0시’는 언제부터인가
사유 2 :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순간, 범죄의 논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유 3 : 비극의 덫은 인간의 심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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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애거서 크리스티 코드 The Agatha Christie Code』 세 번째 도서가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