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코드』 연재, 다섯 번째 도서

『커튼-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정의는 법의 커튼 뒤에서

죽는가, 살아남는가.


커튼-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리뷰 내용 4컷으로 미리보기!


푸아로의 막을 내리다


이 작품의 원문 제목은 『커튼 : 푸아로 최후의 사건 Curtain:Poirot’s Last Case』이다. 푸아로의 최후이자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커튼 : 푸아로 최후의 사건』을 집필한 시기는 1940년이지만 출간은 1975년이라고 한다.(애거서 크리스티 생애 1891~1976)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작가가 전쟁 중에 혹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서 푸아로의 종언을 준비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내가 죽으면 푸아로도 죽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뉴욕타임즈》에 푸아로의 죽음이 부고 기사에 실렸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죽음과 푸아로의 죽음을 전제로 작품을 집필했으니 분위기가 어두운 것은 물론 허무와 무력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던 시기의 영국은 해체기에 들어섰을 것이다. 세계 흐름 속에서 영국의 윤리와 계급 질서들이 무너지는 시기였을 테고 전쟁이라는 상황이 무언가를 가리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존의 모든 상식과 양심, 정의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혼란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고, 개인들의 내면에도 흐른다. 생명 존중 자체가 사라지는 시기가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을 끔찍한 폭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전쟁 어디에 생명이 있는가? 죽음뿐이다.(그래서 전쟁 시기에 평화운동이 활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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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상징을 파헤친다


탐정 푸아로가 등장하는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스타일스 저택이다. 원제목은 『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이고, 번역본은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작품은 아직 읽지 못했다.)이다. 푸아로의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가 연결되는 지점이 바로 『커튼 : 푸아로 최후의 사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탐정 푸아로는 굉장히 노쇠한 상태고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1. 작가가 독자에게 친 시간차 커튼 : 독자와 거리두기


작가는 푸아로라는 탐정의 생을 연극무대 장치처럼 꾸민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제목도 ‘커튼’이고, 무대의 시작과 끝을 알릴 때 거대한 커튼을 열고 닫는다. 푸아로의 결말을 1940년에 끝내놓고 감추었던 것. 작가가 독자에게 시간차로 커튼을 친 것이다.

인간의 삶도 커튼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주체적 커튼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다고 보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어떻게 상영해야 하는가. 무대 위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2. 숨겨진 진실을 가리는 커튼 : 불투명한 진실


푸아로는 헤이스팅스에게 모든 진실을 가린 상태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커튼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헤이스팅스와 독자는 알 수 없다. 작가와 푸아로가 철저하게 커튼을 닫은 채 사건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조종해 살인하게 만드는 존재가 X다. 가해자와 피해자, 조종자와 실행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 구조는 ‘커튼’이라는 상징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겉모습은 사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신을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커튼을 치고 산다. 커튼을 걷었을 때 진짜 모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실은 언제나 커튼 뒤에 있다.


3. 도덕과 법 사이의 커튼 : 윤리적 불투명성


이 작품은 당시 영국 사회의 모습도 담고 있다. 윤리성을 가린 커튼처럼 불투명한 영국의 미래를 상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윤리에 대한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정의와 법 제도, 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눈에 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안락사에서 자기 결정권에 대한 논의들. 대화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작품의 핵심 주제와 사유를 이끄는 장치로 기능한다.(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대화들 역시 커튼 뒤의 살인자 X가 의도한 바였다. 소름!)

‘정의와 범죄 사이의 커튼’을 들춰보게 만드는 이 작품이 더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모습을 고찰하게 만드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4. 삶과 죽음의 커튼 : 자기 결정의 경계


“벨을 울려 커튼을 내리자.”
푸아로가 헤이스팅스에게 한 말이다.

푸아로는 스스로 커튼을 내리고자 이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커튼을 스스로 열고 닫는 것을 자유의지와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유 거리를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다.

작품에서 커튼은 인간에게 내면적 고찰을 해야 한다는 차분함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독자가 책을 읽고 나서 시간차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작품 속 상황과 대화들, 사색 거리가 시간을 두고 몰려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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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의 살인자를 찾다


완전 범죄 살인범을 커튼 뒤에 숨겨놓고, 살인범의 방에는 커튼을 쳐 두었고, 에르퀼 푸아로 탐정의 생애에도 커튼이 드리운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커튼 뒤의 살인자!

도덕적 양심과 정의의 경계에 대해 정면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도덕추리소설’로써 뛰어난 작품이다.

삶과 죽음, 윤리, 제도, 법체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 『커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법체계는 언제나 권력자나 강자에게 너그러웠다. 법체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러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직접 살인을 하지 않는다. 명령만 내릴 뿐. 그러니 실행자만 처벌받고 잊혀진다. 한 명을 살해한 사람은 감옥에 가지만 히틀러나 전두환처럼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자들은 잘 먹고 잘산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은 안 된다. 그리고 살생도 안 된다.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살생을 하면서 평생을 살고 있는지.

누구나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살인을 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마음에서 일어난 살인을 실행하게 만드는 촉발점은 무엇일까? 푸아로는 완전 범죄자 X를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자로 보았고, 가장 위험자 인물로 판단한다. 자기만이 X를 잡을 수 있다고.


헤이스팅스는 푸아로에게 범죄를 예방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푸아로는 살인을 예방할 수 없는 방법을 말한다. 범행 동기를 모르기 때문에 희생자에게 경고를 해 줄 수도 없고, 범인을 협박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극도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언제, 어떻게 사건이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해야 하고, 심리학적으로 시간을 맞추어 사건 현장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인자를 잡아야 한다. 푸아로는 자기가 설명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 범인을 잡겠다고 말한다.

이번 살인은 금전적인 부분도 아니었다. 푸아로가 사건을 해결할 때 첫 번째 동기로 보는 것이 바로 금전적인 이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살인자를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범행 동기를 모르기 때문에 다음 희생자를 알 수도 없다. 『셜록 홈즈』에 등장하는 모리스와 대결하는 것처럼.

우둔한? 헤이스팅스의 서술을 따라가야 하는 독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헤이스팅스가 X를 앨러턴으로 확정하고(딸 걱정에) 서술되는 내용을 따라가야 하니까 진짜 X의 정체를 찾기가 어렵다. 이것은 작가의 트릭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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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작가의 친절한? 복선


작품 초기에 푸아로가 헤이스팅스에게 X를 잡기 위해 필요한 중요 사건 A~E를 보여준다. 중요한 복선이니 표시해 두고 살펴야 한다. 네 개의 사건이 스타일스 저택이 있는 주에서 발생했다. 릭스 사건이 발생했던 마을은 캐링턴의 삼촌이 살고 있는 집과 가까웠다. 프랭클린 부인의 가족도 그 근처에 살았다.

푸아로가 말했듯 헤이스팅스는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고, 사건을 엉뚱한 방향에서 본다. 물론 푸아로의 뛰어난 두뇌를 따라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헤이스팅스가 딸 주디스를 보호하기 위해 바보 같은 추리를 하는 바람에 독자는 정보가 제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헤이스팅스의 말을 아예 믿지 않고 책을 읽었다.

헤이스팅스의 선입견으로 정보를 왜곡하게 만드는 작가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았다.^^; 푸아로의 말을 아주 신중하게 곱씹으며 읽다 보면 X를 찾을 수 있다.

콜 양의 말,
“이곳이 우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거예요. 늙고 온순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여관. 그 안은 실패한 사람들로 가득하죠. 딱히 갈 곳도 없고 앞으로 몸을 의탁할 곳도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들. 지금까지 좌절과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들, 늙고 지치고 끝장난 사람들 말예요.”

살인자 X의 식탁이 차려진 곳이 바로 스타일스 저택인 셈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만 골라서 범죄를 저지르게 조종하는 악인! 그렇다면 강자에게 X는 어떻게 행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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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보는 눈


애거서 크리스티의 위대함은 이 작품에 있다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탐정인 푸아로를 죽였고, 탐정소설을 마무리했으며 도덕적 한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정점을 말하는 작가 의식이 놀랍다. 모든 진실은 <후기>에서 밝혀진다. 독자는 커튼이 내려진 후 진실을 알게 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인식하고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진실은 변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태양이 구름에 가리듯 커튼에 가려지게 될 뿐. 진리를 보는 눈은 지독한 자기성찰에서 시작된다. 지름길도 없다.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독자에게 남긴 마지막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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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직접 정리)


에르퀼 푸아로 : 벨기에 출신의 명탐정. 노년이 되어 중증 관절염을 앓고 있다. 휠체어에 의지하며 스타일스 저택에 머문다. 잠재적 살인자(X)를 추적하며 탐정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자 한다.

아서 헤이스팅스 : 푸아로의 오랜 친구이자 조수 역할을 한 사람이다.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있다. 4남매 중 막내딸 주디스를 걱정하는 인물이다. 푸아로가 스타일스 저택에 딸과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그곳으로 향한다. 푸아로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사건에 휘말린다. 푸아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작품의 서술자다.

주디스 헤이스팅스 : 헤이스팅스 대령의 딸로 젊고 독립적이다. 이공계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열대 지방 질병에 관한 연구에 몰두해 있다. 프랭클린 박사의 연구실에서 조수로 일한다.

스티븐 노턴 :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조류학자이다. 쌍안경을 가지고 다니며 새와 꽃을 관찰한다. 다리를 절며 소심한 성격이다.

존 프랭클린 박사 : 과학자이자 의사다. 주디스와 함께 연구에 몰두해 있다. 여기저기 잘 부딪치는 성격이다. 아내 바버라의 병간호를 병행하고 있다.

바버라 프랭클린 : 존 프랭클린의 아내로 병약하나 질투심이 많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크레이븐 : 바버라 프랭클린의 간호사.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인다.

러트렐 부인과 대령 : 생활에 쪼들린 나머지 스타일스 저택을 사서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다. 러트렐 부부와 아는 사람들의 소개로 투숙객을 모았다. 캐링턴 경이 프랭클린 부부를, 프랭클린 부부는 노턴과 콜 양에게 호텔을 추천했다. 러트렐 부인은 사업 수완이 있지만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러트렐 대령은 라이플 총으로 토끼를 잡는다고 했지만 아내의 어깨를 맞추고 말았다.

앨러턴 소령 : 사십 대 초반으로 잘생긴 남자. 떡 벌어진 어깨에 구릿빛 얼굴과 가벼운 말투를 가졌다. 여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끌었고 남자들은 대부분 그를 딱딱하게 대했다. 마약성 약을 가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콜 : 차분하고 조용한 여성이다. 원래 성은 리치필드고, 콜은 어머니 쪽 성이다. 매튜 리치필드가 아버지고 폭군이었다. 언니 마거릿 리치필드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수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푸아로가 보여준 사건 E와 관련된 당사자다.

윌리엄 보이드 캐링턴 경 : 인도의 한 지방에서 총독을 지낸 인물로 과거에는 승승장구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유산을 받아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바버라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다.

커티스 : 푸아로의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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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거리


사유 1 : 인간은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가? 타인을 조종해 죄를 짓게 만든 자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현대사회의 선동과 조작은 타인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빼앗는가?

사유 2 : 자유의지와 악의 모호성-살인을 저지른 이들은 진범의 영향력을 받았지만, 결국은 자기 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심리적 조종을 받은 행위는 어디까지 자유의지인가?

사유 3 : 인간의 어두운 내면은 어느 지점에서 촉발되는가?

사유 4 : 정의는 법을 넘어설 수 있는가? 푸아로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애거서크리스티 #AgathaChristie #추리소설 #커튼


✍ 다음 연재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1~9화)》 통합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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