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 유명우 옮김
또또또 당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에게!
모든 추리를 벗어난 결말이었다.
이번엔 기필코 맞춰보리라 마음먹고 요약하며 읽었는데……. 문장과 어휘도 꼼꼼하게 기억하면서 읽었는데……. 또 틀리다니.
『0시를 향하여』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추리소설이었다. 에르퀼 푸아로라는 탐정의 활약과 밀실 같은 기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미리 추리하고 추측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냥 상상하며 책에 몰입하는 방법밖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소~~오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탄탄한 구성과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20세기와 21세기 소설들의 반전들이나 복선은 잘 찾아내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은 하나도 맞춘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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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나 만화 등에서 밀실 살인사건은 난제에 해당한다. 열차라는 공간적 배경은 매력적이다. 열차라는 공간에 범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면? 내부의 적이 가져오는 공포가 외부의 적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살인범은 지금, 우리와 함께 이 기차 안에 있습니다.”
작가는 탐정 푸아로가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실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푸아로가 승객들에게 하는 질문과 그들의 답변을 치밀하게 구성해 놓았다. 한 번으로는 어림도 없고, 두 번도 어렵다.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작가가 만들어 놓은 힌트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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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수많은 (올바른)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의 고통 속에 있다
작품을 읽을 때는 사건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 푸아로와 함께 범인을 찾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애초에 선과 악은 구분되었던 게 맞는 것일까? 악을 처벌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 달라져 왔는가?
우리가 법을 믿고 법으로 악을 처벌한다고 믿는 이 방식이 선한 방식인가?
법을 악용하는 자들은 없는가?
법이라는 제도를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 법 위에 군림하는 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정의란 법안에만 존재하는가?
2025년 한국의 사법 체계를 보면서 더 많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라는 체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법이 포함된다.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검사는 국가를 대변한다. 법원의 재판관은 국가라는 사회에서 약한(억울한) 국민(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재판관이 신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사한다.
국가의 존립은 국민에게 있다. 법원은 약한 사람을 위해, 재판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 관점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약자를 향해 있어야만 법원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선과 악이라고 말하는 이분법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건드린다. 이번 기회에 머리에서 연기나도록 질문과 사색을 하기 바란다. 더 많은 질문들이 쏟아지지만 자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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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는 범죄를 통해 범인을 잡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는 모순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합리와 효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푸아로는 사건을 해결하고 법인을 밝혀내지만, 그 진실이 오히려 푸아로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푸아로는 사건을 해결했지만 기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범인을 경찰에 넘길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모든 진실이 정의를 말하지는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란 말인가. 우리 역사에서 법과 제도의 공백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가. 법과 제도가 권력에 붙어, 기득권에 붙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우리가 올바른 일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그릇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법을 도구로 쓰기로 약속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복잡하고 다층적이고 예측 불가한 면이 얼마나 큰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렌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어떤 작품보다 눈은 빠르게 소설을 읽었지만, 머릿속은 녹지 않은 눈덩이에 눌린 것처럼 무거워지는 작품이었다. 또한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의심과 고민, 성찰을 위한 안내서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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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책에 나온 그대로)
에르귤 포와로 : 우연히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살인 사건을 맡게 되어, 특유의 방법으로 해결해 내는 벨기에 인 탐정.
부크 : 국제 침대차 회사의 중역. 복잡한 열차 살인 사건을 친구인 포와로에게 슬며시 떠맡긴다.
피에르 미셀 : 범죄가 일어난 열차의 차장.
콘스탄틴 의사 : 처음부터 에르큘 포와로와 함께 열차 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메리 데베남 : 조용하고 냉정한 성격의 영국인 가정 교사.
에버스너트 대령 : 프랑스 어는 형편없지만, 포와로의 질문을 교묘하게 받아 넘긴다.
헥터 매퀸 :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래체트의 비서.
래체트 : 자비를 베푸는 체하는 거짓 박애주의자.
안토니오 파스카렐리 : 성격이 과격하고 다혈질인 사람으로, 전형적인 이탈리아 인.
에드워드 헨리 매스터맨 : 몸이 마르고 얼굴빛이 안 좋은 재체트의 숙련된 하인.
하드맨 :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이 아는 체하는 미국인 외판원.
드라고미로프 공작 부인 : 진짜로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는 러시아 귀부인.
그레타 올슨 : 간호사 출신의 스웨덴 여자. 피살자를 가장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한다.
허바드 부인 : 말이 많은 미국 부인.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한다.
힐데가르데 슈미트 : 열차 살인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러시아 공작 부인의 하녀.
안드레니 백작 :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헝가리 외교관.
안드레니 백작 부인 : 용의자로 지목받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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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1 : 진정한 복수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사유 2 : 침묵하는 정의도 가능한가(푸아로는 진실을 말할 것인가)
사유 3 :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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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애거서 크리스티 코드』 연재, 다섯 번째 도서를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