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1~9화) 통합 리뷰 | 감독 황동혁
반전 내용도 담고 있으니 작품을 먼저, 리뷰는 후자로! 아직 《오징어 게임》을 못 본 독자라면.
9회로 마무리된 탄탄한 드라마다. 감독이 깔아놓은 복선을 잘 따라가면 반전 부분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작품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한 논리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본주의의 근본을 적확하게 건드린 작품이다.
나는 첫 회부터 001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001번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참가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그만 여유로워 보였다. 아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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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권력층과 지배층의 폭력적이고 폭압적인 게임에 놀아나는 세상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자본주의 세상은 게임에 쌓이는 돈처럼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는 것도 누군가의 목숨을 밟고 서 있는 것이다.(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절대로 우리의 목숨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 개념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는 소수의 집단을 위해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기억하고 작품을 본다면 장면마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가장 상징적인 게임이 ‘징검다리 건너기’다. 반드시 앞사람의 희생, 목숨을 전제로 전진하게 된다. ‘줄다리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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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삶은 <2화 지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게임 속이나 현실이나 그들은 지옥에서 산다. 그나마 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면이 게임상에서는 나타나지만 현실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이다. 참가자들은 현실에서는 회생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게임이 진행되는 무인도처럼 사방이 막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자신들이 섬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이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화가 필요했다.
1화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인물들이 모두 충격을 받고 게임을 거부한다. 그러나 곧바로 2화에서 현실이나 게임 속이나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3화에서 다시 모인 참가자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져 있었다. 공포가 주는 간절함 앞에서 인간의 악한 힘은 어디까지 발현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프로트맨은 돈을 보여준다. 그 돈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덕성과 올바른 가치관은 얼마나 힘이 약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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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하고 싶은 말을 1화~3화를 통해 치밀하게 잘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유지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간은 모두 자신은 희생자가 아닌 쪽에 서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참가자들 모두 자신이 돈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열심히 하면 자신은 이길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자신이 이긴다는 것은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무시무시한 세뇌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참가자들을 쉽게 끌어들이는 방법, 딱지치기! 어렵지 않고 누구나 해 봤던 그 게임. 자본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섬에서 유일하게 치솟는 검은 연기다. 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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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라는 인물이 형을 찾아서 이 섬에 잠입하는 과정과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들에서는 개연성과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초반에 이 작품을 계속 보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를 응원하게 된다.
홍준호라는 인물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충격이었던 것은 이 게임이 몇십 년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져도 홍준호처럼 직접 찾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충격인 것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실종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정의 이름으로 포장된 계급 게임
현실에서도 게임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공평한 게임이라고 얘기하는 프런트맨! 그들이 생각하는 평등과 공평함은 참가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느끼는 평등과 공평함과는 다르다. 앨리트들은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와 약자들을 죽이고 쌓은 부로 재미 삼아 사람 목숨을 죽이는 그들의 세계관에는 철저한 계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류사적으로 봐도 계급은 여러 형태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오랜 시간 유지되어왔다. 현대사회는 돈이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을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엄청난 집중력과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얻기 시작한다. 게임 참가 장소에서는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보인다. 여기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진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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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1화 첫 장면에 나오는 오징어 게임이 마지막 게임일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기훈이 이길 것이라는 것도. 이 작품에 나오는 게임이 어릴 때 했던 게임이라는데, 여기에서 ‘어릴 때’라는 기준이 시대를 가르고 공평은 없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이런 게임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001번이 놀고 싶어서 자신이 어릴 때 재밌게 했던 게임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자본주의는 14세기 이후로 계속 살아남고 있다. 자본주의는 ‘제로 섬zero sum’을 포함한다. 무시무시한 의자 뺏기 놀이와 같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제 하나의 의자만 빼앗는 것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자를 빼앗아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심심하고 지루한 것이다. 그래서 그 빼앗은 의자를 가지고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본질을 놓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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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만큼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은 작품은 보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기훈이 001번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이미 예상했다. 성기훈과 같은 인물의 행동이 그나마 희망을 주었다.
그의 마지막 머리카락 색깔처럼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작품배경 1950년대)에서 홀든이 왜 빨간 사냥모자를 쓰고 다녔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자본주의는 겉모양만 바꿔서 살아남을 것이다.(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지겠지만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본질을 보는 것은 어렵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자본주의는 자발적으로 자본가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만든다. 성기훈이라는 인물은 그 본질을 목숨 걸고 배웠다. 그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001번과 대화하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을 믿는, 아주 얇고 보이지도 않는 도덕성에 기대는 것은 인간human being이 되라는 의미가 아닐까.
001번은 죽을 때까지 게임을 즐겼다. 상류층의 사고방식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들은 게임을 해서 지면 그만이지만 게임 참가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물론 인생이 한 번의 삶으로 끝나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수명을 다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죽음을, 인간의 생명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신이 아니라 자본가들이라는 진실을 이 작품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보다 공포스러운 진실은 없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들은 오로지 001번이 대표하는 상류층의 개인적인 문화가 담긴 것이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자본주의에 공평과 평등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단어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정말 중요하다. 자본주의만 존재하게 놔두면 제국주의를 일으키는 것이다. 혐오와 전쟁 말이다. 뿌리가 민주주의인 상태에서 자본이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우울하고 잔인하고 공포스럽고 분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을 고찰하게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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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아직 보지 않았다. 시즌 1의 치밀함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즌 3까지 종결되면 정주행하려고 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이 나오자마자 보았지만 지금까지 생각난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다룬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P.S. 2 : 드라마에 등장한 게임들을 나도 어릴 때 많이 했었는데, 놀이 속에 잔인성이 내재돼 있었다니. 놀이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 듯하다.
게임 속에 숨은 자본의 가스라이팅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오징어게임 #자본주의본질 #제로섬zerosum
✍ 다음 연재 – 『애거서 크리스티 코드 The Agatha Christie Code』 여섯 번째 도서가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