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1939년에 발표한 자전적 산문집이다. 추락과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내용이지만, 아름다운 문체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생텍쥐페리의 시적인 문체 덕분이다.
작가는 비행을 하면서 바라본 인간의 세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떠서 고독한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한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한계 상황을 비행을 통해 겪다 보니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작가의 삶 전체가 전쟁 속에 있었다.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야간비행』리뷰 때도 언급했었던 EBS 지식채널e “마지막 비행” 영상을 먼저 보기 바란다. 작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작품이 『어린 왕자』의 서곡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루고 있는 주제들도 그렇고, 문체도 『어린 왕자』와 많이 닮아 있다. 『인간의 대지』가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이어서 사유 거리가 더 깊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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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비행을 하면서 여러 번 추락 사고와 불시착을 경험한다. 그 중에서도 1935년 리비아 사막에 비행기가 추락한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막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실제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로 채우고 있다.
이 경험은 나중에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를 대입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린 왕자가 자기 별에 있는 장미에 대한 책임을 배우게 되는 장면을 『인간의 대지』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3일 동안 조난당했을 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목마름과 고독, 죽음이 다가오는 경험은 인간 생명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희망을 품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인간이 강해질 수 있는 이유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며, 관계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는 작가의 인식을 볼 수 있다.
비행을 통해 작가만 볼 수 있었던 인간의 대지를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일깨워준다. 그래서 서로에게 책임을 다해야 하며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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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편을 나르는 동료 조종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특히 앙리 기요메의 안데스 산맥 추락 사고는 감동을 준다. 눈보라 속에서 조난당한 기요메는 죽음 앞에서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생존한다. 작가는 앙리 기요메의 책임감과 의지, 사명감을 조명하며 극한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어린 왕자』의 핵심 주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면서, 작가가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하늘에서 바라본 인간의 대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작가가 존경했다고 하는 앙리 기요메의 생환 이야기는 추락과 죽음, 실종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항공로를 개척한 조종사들 간의 우정과 신뢰, 인간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담담하게 끌어낸다. 인간의 용기가 이룩할 수 있는 것들과 연대의 중요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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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기요메는 생환했으나 동료 메르모스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 절망과 공포 앞에서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덤덤하게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애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죽음과 함께 하늘을 날아야 하는 조종사들의 삶에는 죽음을 초월한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연대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편을 가르는 이분법을 무기로 한다면 작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의지,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말한다. 작가는 자본주의를 꿰뚫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과 인간성의 파괴에 깊은 분노를 나타낸 작가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포기하지 않고 밝은 쪽으로 탐구한다.
반면 작가는 아르헨티나 농민들을 만나면서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애를 발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따뜻한 시선을 독자에게 전한다.
나는 작가가 조종사였기 때문에 빅 히스토리적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삶 자체가 극한의 상황이기도 했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이렇게 성찰적이고 사유를 깊이 있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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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과 서스펜스, 농담과 해학이 들어 있는 작품들도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처럼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도 독자 내면의 밀도를 높여준다고 믿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대지』 같은 작품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린 왕자』만 반복해서 읽다가 『야간비행』과 『인간의 대지』를 만나게 되어서 기뻤다. 내 머릿속이 무척 바빴고, 사유의 시간이 길었고 온몸으로 사색할 수 있는 글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와 관계 맺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지만 가장 먼저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생(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보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연구 대상이야.”
그때는 남들을 상대로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연구(탐구)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래서 이 작품이 얼마나 깊은 통찰로 쓴 글인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고전 작품들을 명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을 밑바닥까지 탐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밑바닥을 보았는가. 가장 먼저 탐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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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도서 『기사단장 죽이기』 리뷰(1, 2권 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