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초판본 -「위로」와「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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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의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 주는 일.
‘위로’라는 말 참 좋다. 위로의 말뜻처럼 하려면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해야 한다. ‘진심’이 통해야만 위로가 되는 것이다.
화자는 거미를 부정적으로 본 모양이다. 아무래도 요양을 받고 있는 사나이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거미는 ‘흉한 심보’를 가졌다. 그리고 노란 나비는 거미줄에 걸려든다. 그래서 화자는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위로를 한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모습에서 시인은 자기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고 나비처럼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위로’의 뜻과 사뭇 다른 시 내용이다. 화자는 거미를 포식자로 여겼겠지만 거미 입장에서는 생존 문제가 달린 시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개인의 삶이라는 게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리석게도 늦게 깨닫는다. 가장 먼저 자기가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데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거미줄처럼 그물망으로 엮인 개인과 개인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것도 결국 개인의 몫일 텐데. 화자처럼 거미줄을 ‘헝클어 버릴’것이냐, 끌어당길 것이냐도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진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한 사람의 인생과 역사가 함께 그물망으로 엮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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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절절히 와닿는 독특한 시다.
일제 강점기 때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던 우리 민족의 마음이 전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벌어지는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며 슬픈 마음도 잃어버린 껍데기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성경 이야기를 ‘슬픈’ 마음 하나로 이어갔다. 첫 행을 읽을 때와 마지막 행을 읽을 때 목소리 크기가 작아지면서 온몸이 슬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대로 슬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삶을 살면서 온전히 ‘슬프다’로 감정을 해소하는가? 슬픔 속에 분노나 억울함 같은 다른 감정이 대입되는 건 아닌가? 자기가 왜 슬픈지 제대로 알고 슬.퍼.하.는.가!
내 마음에 흐르는 감정 하나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 삶이라면 시인이 말한 ‘슬픔’이라도 제대로 느껴봤으면 좋겠다. 슬픔도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는 삶이 슬픈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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