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리뷰 | 감독 다니엘 콴 & 다니엘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을 차지한 작품이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여우주연상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였다. 양자경이라는 배우를 20대부터 좋아했지만 영화 《타르》를 먼저 본 상태였기 때문에 케이트 블란쳇과 비교하려고 본 영화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자경과 케이트 블란쳇 중에서 나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타르》가 흥행을 못해서 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누가 상을 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연기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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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구성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개연성이 치밀하게 연결된 영화는 아니라고 느꼈다.(멀티버스 세계여서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압도할 만큼 창의적이었다. B급 컬트 같은데 감동과 철학을 말한다. 서양과 동양을 잘 버무렸고, 후두엽을 강타하는 속도가 엄청나서 멍~하게 만든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시각적 기능만 사용하게 만들다가 감정을 건드리는 감동이 있다.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에 정착한 동양인, 미국이 좋아하는 가족이라는 코드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거기에 항상 등장하는 최종 빌런까지 존재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항상 최종 빌런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그 빌런을 물리치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빌런이 딸이기 때문에, 주인공인 엄마는 그 딸을 물리칠 수 없다. 엄마의 마음으로 안아준다. 그 부분이 미국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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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의 현재 삶이 멀티버스와 연결되면서 영화는 속도감을 얻는다. 에블린이 멀티버스에서 모든 인생을 경험했지만 자신의 딸과 남편, 아버지 즉, 현재의 삶에서 만난 인연들과 다른 모습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동양적 사상(윤회)이 접목된 부분이다. 돌이 되었던 때까지도.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것! 그래서 원의 모양이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거울, 베이글, 돌멩이 모양, 인형 눈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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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조이는 모든 것을 살고 나서 허무주의에 빠지지만 내면은 진실한 관계를 원한다. 혼자 죽지 않고 같이 죽어줄 사람으로 에블린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결국 에블린의 삶에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딸과의 관계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에블린의 내면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에블린이 자아를 성찰해야 끝이 나는 구조이다.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장소에 가 보았지만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장소에 가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딸 조이가 그렇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기도 하다. 에블린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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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까지 등장해서 엄청나게 복잡한 상황 같아 보이지만 나는 아주 단순하게 느꼈다.
우리의 인생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은 바로 지금 이순간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진리처럼! 에블린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현대인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하다고 느낀다. 그것이 에블린에게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혼 요구, 거리가 멀어진 딸과의 관계, 몸이 아픈 아버지. 이 모든 것이 에블린의 현실이고 에블린은 이 현실에서 도망치기만 했다. 어느 것 하나 마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이 더욱 꼬였다.
B급이든 8차원이든 이 영화는 철학적으로 ‘현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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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제목이 주제를 다 얘기하고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삶과 모든 공간을 체험하면, 결국에는 ‘현존’만 남는다는 진실과 자신이 처한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해야 한다는 진리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All At Once, 한꺼번에 온다.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깨달음은 설명할 수 없다. 헤르만 헤세가 쓴 글처럼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
깨달음은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깨달은 사람은 용기를 낼 수 있다.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세상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마주 보는 용기, 자기 자신을 마주 보고 타인도 마주하는 용기,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 보는 용기 말이다.
그래서 에블린이 함께 싸우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읽어 낸 후, 다른 방법으로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깨달은 사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갖는 내면의 두려움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런 깨달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감독들의 창의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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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돌멩이가 된 에블린과 조이의 대화가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정신없는 시각적 효과와 속도감을 한순간에 고요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삶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게 만든 장면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깨달음에 대한 진리는 모든 예술작품에서 표현될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현재 내가 도망치고 있는 문제들, 용기 내지 못하는 문제들을 마주하고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되찾기 바란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다음 연재 – 영화 《이니셰린의 벤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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