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전집] 연재:
앤, 반짝이는 이름 #3

3권『레드먼드의 앤』 리뷰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삶의 태도가 이끄는 것


3권 『레드먼드의 앤』 리뷰, 4컷으로 미리보기!

앤전집-레드먼드의앤-4컷.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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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L : 낯선 세계 앞에 서다


『레드먼드의 앤』에는 18~22세까지(1883~1887년) 앤의 생활이 담겨 있다. 어른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앤은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연애 감정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삶을 이어 간다. 그리고 진짜 자신을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에이번리를 떠나 새로운 공간(킹즈포트)에서 살며 어린 시절 품었던 환상을 간직하긴 하지만 어른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레드먼드 대학에서 앤은 여전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상류층 가문의 친구 필리파와 연인 로이 가드너를 만난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익숙한 애이번리를 그리워하지만 킹즈포트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길 만큼 앤은 적응을 잘하고, 자기가 있는 공간을 빛나게 하는 재능을 펼치며 생활한다.

그 나이라면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더 클 텐데, 앤은 고아였던 자기를 받아주고 품어준 애이번리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곳으로 여긴다. 변하지 않는 앤의 그 마음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큰 힘을 준다.

성장은 혼자만의 낯선 시간을 지나야 얻을 수 있다. 공간이 아니라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했을 때야 비로소 성숙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앤은 앤 답게 대학 생활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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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 : 관계를 통해 깊어지는 자아


앤은 관계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다. 현명하고 사려 깊고 유쾌하며 유머가 있다. 단 길버트에 대한 감정은 항상 외면한다.

프리실라, 필리파와 하숙집에서 생활하던 앤은 ‘패티의 집’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살게 된다. 대학 생활을 접한 앤이라 그런지 『초록지붕집의 앤』이나 『애이번리의 앤』보다 성경 구절과 영국과 미국 문학작품들의 구절이 수없이 나온다. 그리고 앤의 말은 상징과 비유가 많고 수준이 높아졌다. 그래도 초록 지붕에 살던 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앤은 모든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해결한다.

앤은 룸메이트들과 우정을 나누고 친구들의 연애를 지켜보게 된다. 다이애나도 결혼을 하고, 루비는 죽음을 맞는다. 어릴 때는 몰랐던 환희와 슬픔, 상실감을 겪으면서 앤은 감정적으로 성숙한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진정으로 나다운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앤은 애이번리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들과 마릴라와 매슈 아저씨의 사랑이 담긴 초록 지붕 집이 그 뿌리였다.


작가는 당시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상을 보여주면서 백마 탄 왕자만큼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길버트를 창조해 냈다. 길버트가 앤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린 시절 앤이 석판으로 길버트의 머리를 쳤을 때부터 한순간도 변하지 않았다니.

낭만주의 시대에 쓰여진 소설이기도 하고, 앤이라는 인물이 워낙 낭만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이해는 된다.^^ 앤은 길버트의 사랑을 거절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는다.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길버트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이해에서 온다. 맹목성과는 다른 사랑이다.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면 갈 길이 먼 것이다. 앤은 길버트를 잃을 뻔한 상황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었고 자기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앤은 어릴 때도 남의 탓을 한 적이 없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앤은 단 한 번도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놓은 적이 없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성찰해 나가는 앤을 보면 어른인 내가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여러 선택 앞에서 진심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사랑, 삶, 자아 성찰까지 인생의 주인공으로 걸어가는 앤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론 실수도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실수를 많이 하는데. 인간은 신이 아니다. 신이 될 수도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초록지붕집의 앤』에서 앤이 마릴라에게 자기의 장점을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는 것. 마릴라는 새로운 실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게 그거라고 대응하기는 했지만 앤은 전혀 다르다면서 자기 논리를 펼친다. 앤의 말 속에는 ‘양심’에 대한 고귀함이 들어 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면서 도망치지 않고 용기를 내며 인생을 살아간다.


이제 앤은 1~2권에서보다 더욱 성숙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겨울의 여왕’(앤이 붙인 사과나무의 이름, 애니메이션에서는 ‘눈의 여왕’이라고 나온다.)과 같은 향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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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W : 사랑을 깨닫는 시간, 나로 빛나는 순간


3권 『레드먼드의 앤』에서 ‘사랑’에 감정을 빼놓고 서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앤의 나이가 그럴 때이기도 하지만, 중년의 사랑도 펼쳐진다. 앤은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앤을 만나면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경청’의 힘일 것이다. 모모처럼.

앤이 친구 길버트의 사랑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길버트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지혜로운 대처를 보면 현실에서 드물 것 같은 인물이긴 하지만.

사랑은 인간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오는 형체 없는 스승이라는 생각을 한다. 길버트는 앤의 공상적인 면까지 사랑한다. 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길버트의 성숙한 사랑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성숙은 환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껴안는 용기다. 길버트는 그렇게 현실 속에서 자기 사랑을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음을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 작품에서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지만 실제 자기 삶에서는 깨닫지 못한다. 앤의 공상이 나는 그런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앤은 자기가 하는 상상이나 공상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만큼 멋지지 않다는 것도, 상상에서 만든 친구보다 현실의 다이애나가 훨씬 귀한 존재라는 것도 깨.달.으.며 배운다.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과 깨닫는 능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 없으면 일상의 사소함에서 비범함을 발견할 수 없다. 철학자나 시인은 그 능력이 중요하다. 깨닫는 능력은 자아 성찰로 연결된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지만 모든 삶이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는 삶이 경험으로 연결되고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은 정말 큰 선물을 가지고 있는 보석 같은 사람이다. 길버트는 앤의 그런 매력을 통찰한 사람이다. 앤은 ‘인생이 과연 상상대로 되던가?’라는 생각을 한다. 앤이 통찰력과 현명함을 가지고 사람을 보기 때문에 타인의 내면까지 살필 줄 아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레드먼드의 앤』에서 앤은 공상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삶과 감정을 자기 언어로 해석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한다. 독자인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행복했다. 미소를 가득 띤 채로 책을 읽었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삶을 수용하는 용기와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19세기 인물인 앤이 21세기인 우리에게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앤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빨간머리앤 #루시몽고메리 #레드먼드의앤 #세번째이야기


✍ 다음 연재 – 윤동주 시인 초판본 시에 대한 단상, 브런치북 『나는 지금, 그의 시에 답하려 한다』 열세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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