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전집] 연재:
앤, 반짝이는 이름 #4

4권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 리뷰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홀로서기가 먼저다


4권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 리뷰 내용, 4컷으로 미리보기!

앤전집-바람부는-4컷.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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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 초반은 지루하다. 앤이 길버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일방적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3권까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앤이 편지에서는 길버트를 향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약혼 후, 길버트는 의학 과정 3년을 이수하기 위해 학교로 떠나고 앤은 섬머사이드의 여자 교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장거리 연예가 시작된 것이다. 앤의 긴 편지들을 읽으면서 앤의 상황은 알 수 있지만 길버트의 서사는 아예 배제되어 4권이 진행된다. 길버트의 답신도 함께 실렸다면 풍부한 서사가 되었을 것이다. [빨간 머리 앤 시리즈]의 중심이 앤인 것은 맞지만 서사가 한 명에게 치우쳐 있는 것은 안타깝다.

물론 앤이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초록지붕집의 앤』부터 서사적 성장을 함께 한 독자로서 3권까지 등장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특히 앤을 향한 길버트의 마음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인물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한데 앤에게만 치우친 서사가 글을 지루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 어차피 편지 형식을 취했으니 길버트의 답신도 몇 개 정도는 넣어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초반에 지루한 느낌이 있다. 그 부분만 지나가면 앤의 순수성과 전문적 지식, 인생을 마주하는 용기와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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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L : 홀로서기를 지나 동행의 시간을 그려나간다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은 22~25세(1887~1890년)까지 앤의 생활을 담고 있다. 서머사이드 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앤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하지만 앤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홀로서기를 통해 성장하기 시작한다.

레드먼드 대학에서도 퀸 학원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외딴곳에 홀로 떨어진 경험은 유일하게 서머사이드 고등학교에서다. 물론 앤은 주말에 애이번리로 돌아간다.


당시 여성이 레드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문학사를 수여한 어린 나이였다는 것 자체가 사회생활을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자가 대학까지 가는 건 지나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어린 여자 교장이니 학교건 마을이건 앤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서머사이드에서는 프링글 집안이 학교는 물론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앤은 초기에 고전을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을 계기로 프링글 가문을 이겨버린다. 이때도 앤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앤은 관계든 어떤 일이든 항상 좋은 의도,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해 왔다. 물론 좋은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나쁠 수 있지만 앤은 언제나 좋은 목적으로 시도하고 결과는 자기가 책임을 졌다. 초록지붕집의 앤이 된 이후도 그 이전에도.

따라서 프링글 가문을 이기게 된 것은 프링글 집안이 앤의 좋은 의도를 오해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앤의 순수하고 소녀다운 목적성이 어렵고 커다란 산을 넘게 해 준 것이다.


또한 앤은 캐서린 브룩을 비롯해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에서도 그 능력은 앤과 타인의 관계를 빛나게 만든다.

앤은 리틀 엘리자베스와 순수함을 나누고, 루이스의 외삼촌을 찾아주고, 학생들의 재능을 발견해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어이없는 상황들도 벌어진다. 그러나 앤은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잡고 나아간다. 앤에게는 애이번리의 사랑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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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 : 감정의 품격을 배우다


서머사이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앤이 순탄하게만 살아왔다고 믿는다. 레드먼드 대학을 졸업한 문학사에 여성이고 교장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앤이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작은 마법의 세계를 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초록지붕집으로 오기 전까지 앤이 어떤 과거를 헤치며 살아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앤은 자기의 과거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운디드 힐러가 되어 있었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눈 감지 못한다.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앤의 오지랖은 주변을 바꾸는 힘이 있다.

앤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밀어붙이기만 하거나 자기 생각만 강요하지 않는다. 앤의 힘은 경청에서 나온다. 책에서는 앤의 회색 눈과 앤의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나오긴 한다.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에서 첫 번째 해를 보내면서 앤은 냉소와 벽에 가로막히지만 품위 있는 말과 눈빛, 태도로 신뢰를 얻는다. 『초록지붕집의 앤』에서도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둘째 해부터는 조금씩 앤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앤도 그들의 삶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간다. 물론 마을 사람들과 전부 맞을 수는 없다. 때로는 그들의 위선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앤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앤은 타인에게 자기를 맞추지 않는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쓴다. 『레드먼드의 앤』에서 필리파가 앤을 ‘앤 여왕님’이라고 부른 걸 보면 알 수 있다. 앤이 성장하면서 몸에 익혀온 태도의 품격이 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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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W : 사랑이 깊어지는 시간


앤은 3년이라는 시간을 서머사이드에서 보내면서 온전히 홀로서기를 하고, 애이번리의 가족들과 길버트의 사랑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계기가 된다. 어린 시절 감정의 춤을 추던 앤이 매슈와 마릴라의 사랑으로 다듬어지고 세공되면서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나중에 알게 된 길버트의 길고 끈질긴 기다림의 사랑은 앤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길버트에게 보낸 서신은 앤이 길버트를 기다리며 쌓아가는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작가는 서사보다 감정을 깊이 있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집의 앤』을 집필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지나치게 앤의 이야기만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앤은 서머사이드에서 독립의 경험을 하고, 길버트와 떨어져 있으면서 결혼이라는 미래를 받아들인다. 앤은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상황과 감정을 바라보며 거리를 두고 생각한다. 편지를 쓰면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 속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고민하고 다짐한다.

앤은 자기를 끈기 있게 기다려준 길버트를 위해 의학 과정 3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준다. 그리고 3년 동안 길버트에 대한 앤의 사랑은 흐려지지 않고 지속된다. 『초록지붕집의 앤』에서도 길버트와 불편한 관계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며 자기의 인생을 펼쳐나간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길버트의 답신도 없고 길버트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지만 『초록지붕집의 앤』, 『애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에서 보여준 길버트의 기다림의 사랑을 살펴봤을 때 앤과 길버트가 왜 서로의 삶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그 속에서 바람처럼 머무는 것. 앤과 길버트의 사랑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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