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무지개 골짜기』 리뷰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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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골짜기』는 앤의 41~43세(1906~1908년)까지를 기록하고 있지만 앤은 중심 서사에서 빠져 있다. 앤은 주변인으로 물러나고 앤의 자녀와 메러디스 목사, 목사의 네 자녀가 중심이다. 글렌세인트메리 마을 잉글사이드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빨간 머리 앤 전집] 뒤에는 권마다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테마별로 실려있다. 이 이야기를 8권에서 하지 않고 7권에서 하는 이유는 『무지개 골짜기』를 읽을 때 교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록지붕집의 앤』에서도 앤이 주일학교에 다니고 목사가 새로 부임하고 교회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캐나다 역사를 따로 찾아보거나 세계사를 꿰고 있지 않다면 헷갈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 대화에 성경 구절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7권 『무지개 골짜기』 뒤에는 주일학교에 대한 배경과 아이들의 놀이, 스포츠, 전래 동요, 동물들에 대한 지식이 나온다. 그 지식을 먼저 알고 작품을 읽는다면 메러디스 목사의 네 자녀를 둘러싼 소문이 이해될 것이다.
1권에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작가의 인생과 빨간 머리 앤 전집 해제, 초판본 일러스트, 애이번리 마을의 지도 및 현재 캐나다에 관광지로 조성된 앤의 작품 속 공간들), 2권에는 작품 속 생활문화(의식주), 3권에는 작품 속 주요 식물이 나온다. 4권에는 작품 속 문학 여행(서사시, 서정시, 희곡, 소설)이, 5권에는 작품 속 근대문물(흑백과 컬러 사진기, 전화기, 자동차, 비행기)이 소개되어 있다. 6권에는 작품 속 사회상(결혼문화, 손님 초대 문화, 백화점,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 금주법과 폐지), 8권에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세계1차대전, 전쟁 이후 달라진 삶)이 실려있다. [빨간 머리 앤 전집]을 읽으면서 앤과 함께 나이를 먹고 시대상과 캐나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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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잉글사이드를 지킨다. 여섯 자녀는 앤과 길버트의 유전자를 받아 사랑과 이해, 공감을 느끼며 자란다.
앤과 길버트의 보금자리인 잉글사이드 뒤편으로 무지개가 걸린 곳을 월터(둘째 아들)가 ‘무지개 골짜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섯 아이만의 비밀 공간이자 전용 놀이터인 셈이다. 그곳에 메러디스 목사의 네 자녀(제럴드, 페이스, 우나, 칼)가 마음의 친구로 들어온다. 또한 무지개 골짜기 위쪽으로 로즈메리의 집이 있고 메러디스 목사와 연애를 하는 장소도 무지개 골짜기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앤은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싸우고 오해가 쌓이고 괴롭힘을 당해도 아이들 스스로 그 삶 속에서 인생의 무언가를 깨닫기를 기다린다. 앤은 아이들 뒤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며 언제든 보호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믿으며 스스로 내면을 키울 수 있게 진정한 사랑으로 기른다. 기다려주고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말하되 스스로 깨우칠 기회를 준다. 아이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잡은 채 겸손과 사랑을 몸으로 보여준다.
잉글사이드의 여섯 아이와 메러디스 목사의 네 자녀가 무지개 골짜기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인생에서 가진 것은 행운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중년 이후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까.
여섯 아이와 네 자녀 그리고 메리 벤스까지, 아이들은 실수하고 갈등을 통해 깨달으며 인생을 배운다. 우정과 농담, 웃음과 장난 그리고 자연이 주는 풍요와 너그러움을 세포에 새기며 순수함을 지킬 힘을 쌓아가는 것이다.
유전자보다 중요한 환경이 아이들을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세기가 인간중심적이다 보니 작품 속에도 그런 내용이 저변에 깔려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신에 대한 믿음 또한 강력하게 작용한다.
나는 『무지개 골짜기』를 읽으면서 『초록지붕집의 앤』이 무척 그리웠다. 앤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는 잘 없다. 어른이 된 앤도 매력적이지만 어린 시절 앤이 얼마나 나를 웃게 만들고 깨달음을 주었는지 이 작품(전집)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순수함은 어린 게 아니라 성숙함의 밑바탕이다. 앤은 어린 시절 순수함을 잃지 않았고 그 위에 사랑과 이해, 너그러움을 쌓아 주변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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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골짜기의 아이들은 메리 벤스를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메리 벤스가 지나치게 솔직해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무지개 골짜기 아이들은 메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앤이 말한 ‘요셉을 아는 자’(짐 선장이 한 말, 5권 『앤의 꿈의 집』)는 아니다. 앤은 ‘마음이 맞는 친구’나 ‘마음이 맞는 사람’으로 표현했었다.(1권 『초록지붕집의 앤』부터)
작품에서 어른들은 메러디스 목사네 자녀들을 한심하게 보거나 트집을 잡거나 자기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함부로 말한다. 설교와 책에만 빠져 있는 목사와 보살펴줄 엄마가 없는 네 아이는 스스로 자라며 목사의 자녀들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들을 이해해 주는 앤과 여섯 아이를 만나 목사 자녀들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질서를 배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숱한 갈등을 극복하고 시기와 질투를 깨달으며 또래 관계에서 오는 아픔을 겪으며 성장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기도 하고 어른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네 명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인생관을 만들어 나간다.
사람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하고 집안일과 양육은 여자의 몫이며, 가문의 이름이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걸 따지지 않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특히 페이스의 깜찍한 행동들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어른도 못하는 일을 해내는 굉장히 용기 있는 아이였다. 아이여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타자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닫을 때는 어른보다 훨씬 강한 고집이 들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어린 시절 편견과 선입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만 잘 가르쳐도 아이들은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지고 쉽게 상처받지만 아이들은 금방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찾는다. 어른이 되면 그 과정이 무척 어려워진다. 타인을 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은 유지하되 ‘요셉을 아는 자’를 찾아내는 능력을 앤을 통해 배운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무지개 골짜기의 아이들을 통해 인간의 성장은 타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 안에서 자기의 품격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공동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주변 인물로 나오지만 앤의 말이 무게감을 더하는 작품이다. 무지개 골짜기의 아이들 뒤에는 앤의 사랑이 견고한 기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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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골짜기의 아이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무지개 골짜기’를 가득 담고 살아갈 것이다.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 골짜기에 무지개가 뜨고 반짝이는 놀이터가 되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안식처가 되어 줄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그곳에서 힘을 얻고 삶을 지탱할 힘을 얻을 것이다. 앤에게 초록지붕집과 자연이 그랬던 것처럼.
[빨간 머리 앤 전집]을 읽다 보면 프린스에드워드섬의 자연 풍광에 넋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을 품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자연이 사계절을 통해 인간을 성장하게 만들고 인간을 생존하게 돕는다.
자연이 인간의 삶을 치유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릴 때 뛰어 놀았던 숲도 지금은 아파트에 자리를 빼앗겼고, 인위적인 숲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수목원이나 휴양림은 돈을 내고 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어릴 때 뒷산에서 뛰어다녔던 생활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지개 골짜기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영원히 빛날 무지개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곳에 남은 사랑의 온기를 기억할 것이다.
월터가 들려주는 ‘피리부는 사나이’는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한 암울함을 예견한다. 그래서 무지개 골짜기의 평화가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무지개 골짜기의 무지개를 추억하며 아이들은 살아가겠지.
과거가 추억이 될 때 인간은 아름다움의 힘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과거가 기억이 되면 기록이 되고 기억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추억은 이미 나쁜 기억이 사라진 공간이다. 추억이 된다는 것은 그 기억에 아름다운 ‘감각’이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아가든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추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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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문체에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앤의 이야기보다 앤의 아이들, 메러디스 목사와 로즈메리의 연애, 목사의 네 자녀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앤에 대한 애틋함이 남았다.
하지만 8권에 이어질 전쟁의 조짐이 7권 곳곳에서 복선으로 깔리며 불안감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나는 이미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7권 『무지개 골짜기』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지 느끼면서 읽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지루하다고 여기지만 말도 안 되는 친위 쿠데타가 있었고 국민들이 막아 내면서 지금의 평화를 간신히 붙잡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몸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처럼 역사나 문학작품이 알려주는 주제 의식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야 한다.
[빨간 머리 앤 전집]을 여자아이들이나 읽는 동화쯤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7권까지 읽으면서 작가는 개인의 삶에서 관계, 공동체, 세대교체, 세계로 확장된 주제 의식을 보인다. 또한 당시 캐나다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사생활의 역사를 들여다보듯 자세하게 알려준다.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이 사생활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살았던 시대보다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지금을 만들었지만, 이 작품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존재와 주체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되 공동체와 함께 나아가는 길이 인간이 펼쳐가야 할 빅 히스토리적 관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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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초록지붕집의 앤』에서 마릴라가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나왔지만, 마릴라는 7권에서도 잠깐 등장한다. 아주 건강하게, 맑은 눈으로. 그래서 2권에서 매슈의 죽음이 더욱 슬펐다.
#빨간머리앤 #루시몽고메리 #무지개골짜기 #일곱번째이야기
✍ 다음 연재 – 윤동주 시인 초판본 시에 대한 단상, 브런치북 『나는 지금, 그의 시에 답하려 한다』 열일곱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