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전집] 연재:
앤, 반짝이는 이름 #8

8권 『잉글사이드의 릴라』 리뷰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8권 『잉글사이드의 릴라』 리뷰 내용, 4컷으로 미리보기!

앤전집-릴라-4컷.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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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를 살다


『무지개 골짜기』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후, 앤은 불안함 속에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심리적∙정서적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 『잉글사이드의 릴라』다. 앤의 나이 49~53세(1914~1918년)까지를 다루고 있고, 릴라는 앤의 막내딸이다. 릴라가 15~19세로 성장하면서 철없는 막내가 세계 대전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캐나다는 영국 연방에 속한 국가였다. 그래서 영국을 조국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전쟁 당시 캐나다(당시는 영국 연방 국가)는 독립부대로 참전을 했고, 전쟁을 치르는 동안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국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1919년 연합국과 독일의 베르사유조약 때 독립국가 자격으로 참여하여 서명했고, 1931년 영국과 영국자치령의 상호관계를 규정한 웨스트민스터조령에 따라 캐나다는 실질적인 자치 국가가 되었다.

이 시기의 간략한 캐나다 역사를 알고 있다면 수전이 하는 말이나 사람들의 대화에서 영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였고, 서강들의 전쟁에서 일본의 총알받이가 되어 엄청난 목숨을 빼앗겼던 시기였다. 『잉글사이드의 릴라』를 읽으면서 이들의 아픔보다 훨씬 잔인하고 끔찍한 한국의 역사가 떠올랐고, 다시 한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감사함과 희생된 분들의 과거에 고개 숙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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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L : 혼자가 된 소녀, 릴라


막내여서 꼬마로만 인식되고 언니, 오빠들에게 어린아이 취급만 받던 릴라는 15세가 되었다. 허영심이 강하지만(『무지개 골짜기』에서 앤이 그 부분을 걱정한다.) 예쁘고 인기 많고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녀다. 15~19세가 여자의 전성기라고 믿는 순수한 소녀다. 자기 존재가 다른 사람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15세 소녀가 세계 대전을 지나는 동안 얼마나 성장하게 되는지 알려주는 작품이 『잉글사이드의 릴라』다.


잉글사이드의 아이들과 메러디스 목사 네 자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서로 좋은 친구이자 연인 관계가 된다. 제임스(젬)는 1913년에 레드먼드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고, 의과 과정 1년 차를 마쳤다. 월터는 퀸스 전문학원을 졸업하고 로브리지에서 교사로 1년째 재직 중이다. 길버트의 단호함으로 레드먼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셜리는 퀸스 전문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낸과 다이는 퀸스 전문학교 학생이다. 셜리는 차분하고 사려 깊은 소년으로 자랐다. 다만 앤 시리즈에서 셜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다.

메러디스 목사네 페이스와 제럴드도 레드먼드 대학을 다니다 집으로 돌아왔다. 제임스는 21세가 되었고 페이스는 19세로 연인 사이다. 칼은 퀸스 전문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레드먼드 대학 등록금을 벌 생각이다. 제리도 퀸스 전문학교에 다니고 있고 낸과 연인 사이다. 우나는 조용하게 월터를 좋아하면서 로즈메리를 도와 동생을 보살핀다.

아이들은 모두 어른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문은 전쟁이라는 불에 타고 있었다. 『무지개 골짜기』 마지막 부분에서 월터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보고 전쟁을 예견한다. 잉글사이드와 무지개 골짜기 아이들은 좋은 추억을 간직한 채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지개 골짜기에 대한 추억에서 릴라는 여섯 번째 막내로 언니, 오빠들과 자주 어울리지는 못했다. 『잉글사이드의 릴라』에서 무지개 골짜기는 릴라의 울음으로 가득차게 된다. 속상하고 힘들 때마다 무지개 골짜기에 가서 실컷 울고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월터와 행복한 추억이 남아 있다.

월터는 릴라를 어린아이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여기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월터의 죽음은 릴라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다. 하지만 월터의 마지막 편지를 보고 릴라는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책임을 다해 살기로 다짐한다. 월터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월터는 전쟁이나 군대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월터는 시인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자로 세상을 비범한 눈으로 바라본다. 앤은 어릴 때부터 월터의 이런 면을 잘 살피려고 노력했었다.

릴라의 순수함은 잉글사이드에서 지켜지면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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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 : 기다림 속에서 성장한다


『잉글사이드의 릴라』는 화려한 파티로 시작한다. 뒤에 따라올 어둡고 잔인한 심리적 고통을 보상받기라도 할 것처럼. 릴라는 15세로 연애와 패션에 관심이 많고, 세상 물정을 몰라도 되는 소녀였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은 그런 릴라를 너무 빠르게 어른으로 변화시킨다. 제임스가 자원해서 입대를 한 후,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릴라는 혼란스러워한다. 교사인 올리버가 잉글사이드에 하숙을 하면서 릴라의 허영심과 어린 마음을 이끌어주었다.

18세~40세 사이의 남자를 모병하는 공고가 붙자 제임스와 제럴드는 가장 먼저 입대한다. 앤은 좌절하지만 꿋꿋하게 견딘다. 앤은 코닐리어와 함께 적십자사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한다. 릴라는 자기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빠진다. 그때 앤이 릴라에게 청소년 적십자사를 조직해 활동하는 건 어떤지 묻는다. 릴라는 자신이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쟁고아 짐스를 맡아 기르게 된다. 길버트는 앤더슨 씨네 갓난아기를 데려온 릴라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스스로 아기를 돌봐야 한다고 못 박는다.

릴라는 처음엔 고생하지만 끝까지 해낸다. 릴라를 보고 있으면 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앤이 릴라처럼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면 허영심이 있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릴라는 앤의 딸이다. 무언가 결심하면 끝까지 의무를 해내는 내적 힘이 있다. 분별력을 기르기 위해 참고 인내하지만 불의한 경우에는 단호하게 맞서는 강단이 있다. 릴라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릴라는 짐스를 기르고, 청소년 적십자단을 이끌어가면서 책임감과 의무를 배운다. 그리고 월터의 죽음으로 비탄과 슬픔과 고통을, 케네스(레슬리의 아들)를 통해 사랑하고 기다리는 방식을 배워나간다. 오빠들의 입대와 전쟁 속에서도 삶을 이어 가는 시간을 마주하며 자기감정을 관리하고 돌보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처음에는 릴라가 철없는 소녀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른들보다 아픔을 잘 이겨내고 무너진 감정을 회복하며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보인다. 나중에는 앤도 릴라에게 의지하고, 올리버를 위로하는 사람도 릴라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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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W :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살아남은 자의 말


월터는 전사했고, 제임스는 부상 후 실종되었다. 잉글사이드의 집에는 상실과 비탄의 구름이 깔려 있었다. 오직 수전만이 맹목적인 희망을 품고 신문을 읽으며 전쟁에 대해 공부하며 힘을 낸다. 64세가 된 수전은 잉글사이드에서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정도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앤과 길버트가 깨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앤의 꿈의 집』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제임스는 자기만의 애완견을 갖고 싶어했지만 항상 실패했었는데 『잉글사이드의 릴라』에서 먼데이를 만나게 된다. 월터의 죽음도 미리 예견했던 먼데이는 제임스가 떠난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4년이라는 시간을 견딘다. 지역 신문에도 날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한 개다.


앤은 릴라를 보면서 위로 받았지만 전쟁이 릴라를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다면서 슬퍼한다. 전쟁이 모두를 다르게 만들었다. 월터의 마지막 편지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월터의 마지막 편지는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릴라는 전쟁의 흐름 속에서도 자기를 지켜내며 어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상실과 기다림, 절망과 희망, 연대와 책임의 감정을 쌓으며 성장과 성숙한 길로 나아간다. 하지만 내면에 남은 순수함과 밝은 면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킨다.

역사의 마지막을 써 나가는 우리들은 어떤 삶을 그려내고 있는가. 과거의 아이들이 말을 건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과거가 될 현재의 아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뭔가 극적인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니, 난 참 못났어. 아, 예전처럼 사랑스럽고 평온하고 즐거운 나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만 한다면 다시는 불평하지 않을 거야.”
(본문 82쪽, 릴라의 말)


평화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도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피 위에 쌓인 것이다.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절망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앤의 삶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기억할 때다. 앤 셜리라는 소녀의 삶을 통해 ‘성장과 사랑, 상실과 회복, 공동체와 윤리, 연대 의식’을 배웠다.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 시대를 관통할 때 어떤 태도와 품격으로 연결되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일 수도 있다. 사생활의 역사 같은.

존엄을 배우고, 상상에서 사랑으로 성장하는 기록이 빨간 머리 앤 시리즈다. 인간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면 자기 자신과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녀에서 어른이 된 개인적 서사가 아니라 삶을 감당할 줄 아는 존재와 주체적 삶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대한민국도 전쟁의 위기를 이겨냈다. 존엄과 성숙,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사는 가여운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오직 이기심과 탐욕뿐이다.

1876년부터 1918년까지 시대가 극복하지 못했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빨간 머리 앤 시리즈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지.
시간이나 무의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와 인식의 주체로 살고 있는지.
소유가 아닌 돌봄과 책임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연대의 삶은 어떻게 확장되는지.
진정한 사랑과 존엄의 완성을 위해 나는 무엇을 견디며 어떤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해맑게 웃으며 시작해서 깊은 철학적 사유로 마무리된 빨간 머리 앤 시리즈는 내 책장에서 앤의 웃음처럼 빛날 것이다.

끝에 'e'가 붙은 그 이름, 반짝이는 Anne처럼!

앤전집1.pn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빨간머리앤 #루시몽고메리 #잉글사이드의릴라 #여덟번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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