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움직이는 손가락』 리뷰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0, 권도희 옮김, 황금가지 출판사(2004년 출간된 도서다. 번역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P.S. :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 리뷰입니다. 그러니 작품을 먼저 읽은 후 리뷰를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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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작가가 심어둔 복선에 따라 추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결론에서는 항상 반전에 반전을 만나게 되긴 했지만.
그런데 『움직이는 손가락』은 복선을 따라가면 엉뚱한 일이 벌어지거나 범인을 추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다. 후반부에 미스 마플이 등장하고 나서야 지금까지 추론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미스 마플에게 제리가 전해주는 사건들의 윤곽과 미스 마플이 그의 말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부터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을 1942년에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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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글(영상 매체 포함)을 읽을 때 제목을 먼저 본다. 제목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주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제목의 상징을 두 가지로 봤다.
제리 버턴은 라임스톡이라는 마을에 요양을 위해 잠시 머물기로 한다. 여동생 조애너와 함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제리와 조애너는 남매 사이가 아니라 연인 사이일 것이라는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현대사회에서 무수한 거짓을 인터넷에서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임스톡 마을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익명의 편지를 받고 불쾌감을 넘어 억울한 일까지 당하게 된다. 서로를 의심하고 비방하며 신뢰가 무너져 버린다. 조그만 라임스톡 마을은 공포로 얼룩진 장소가 되어간다.
익명의 편지는 현대사회의 댓글이나 가짜 기사, 가짜 SNS 내용과 같다. 남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손가락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럴 리가?”, “설마?”라고 여기지만 가짜를 진짜처럼 만드는 방법은 꾸준한 노출이다. 작품에서도 익명의 편지는 라임스톡 마을 사람들 대다수에게 전해진다. 내용은 터무니없고 허무맹랑 하지만 골고루 돌아가면서 꾸준히 배달된다. 마을 사람들은 불쾌한 편지 내용에 대한 소문을 생성하고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가 마을 전체를 공포로 밀어 넣는 것이다. 즉 제목은 자신은 밝히지 않으면서 타인을 비난하고 비방하며 거짓을 퍼뜨리는 ‘무책임한 폭력’을 상징한다.
또한 움직이는 손가락은 말(=혀)과 중독을 상징한다. 손가락은 뒷담화를 넘어 타인의 마음과 정신에 상처를 입히는 폭력적인 혀다.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에 가라앉지만 익명의 편지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한 혀는 멈출 수가 없다. 마약과도 같은 손가락은 모방을 생산하고 멈출 수 없는 폭력으로 확산된다. 역사에서 전쟁은 독재와 같고 독재는 거짓된 말과 글로 확산되어 믿음을 넘어 위험한 확신을 심어 준다.
작품에서는 익명의 편지를 모방하기에 이른다. 결국 멈출 수 없는 손가락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 물론 미스 마플이 등장하고 나서야 밝혀지긴 하지만.
인간의 몸에 있는 손가락과 혀를 책임져야 한다. 무책임한 손가락과 혀는 범죄와 같다. 따라서 작품의 제목은 비방과 거짓을 퍼트리는 중독적이고 무책임한 폭력의 심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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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하고 잘못 움직인 손가락이 보낸 익명의 편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공포로 밀어 넣고 진실을 사라지게 만드는지 치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진실을 덮기 위한 사악한 범죄, 그리고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에서도 뒷담화이론을 말한다. 물론 뒷담화이론을 말하려면 ‘언어’라는 독특한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겠지만 인간이 뒷담화를 통해 협동을 하고 집단적인 상상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 특징 때문에 사피엔스는 전설, 신화, 신, 종교를 발전시켜 나갔고 인지혁명과 더불어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거의 대부분은 단체톡이나 비밀톡에서 이루어지는 뒷담화가 원인이 된다. 현대사회는 수없이 많은 뒷담화를 생성하고 조직적인 문자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범죄가 작품에 등장하는 것이다. 뒷담화는 실체가 없다. 공허한 수다에 불과한 부정적 정서를 공유하며 서로를 옭아매는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진실을 덮고 거짓을 믿게 되면 그때부터는 폭력과 광기, 야만적 행태로 넘어간다. 이해와 상식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작품에서 소문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범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의심을 심어두고 자신에게 올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범인은 그 작업을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했으며 드디어 자기 아내를 독살하고, 하녀를 때려 죽이고 의붓딸까지 가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오직,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들들의 가정교사 엘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즉 모든 범죄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개인의 사악한 욕망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범죄는 사적이고 이기적이며 유치하고 사악하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양심 같은 것은 아예 자리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진실이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다. 아름다운 가정교사 엘시를 갖기 위한 것이라니. 그래서 마플은 제리에게 말한다.
“잘 알고 있겠지만, 완벽하게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교묘하게 마술을 부리는 것과 같답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인다는 뜻인가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람들로 하여금 엉뚱한 것을 보게 하고, 전혀 상관 없는 곳으로 가게 만들어야 하지요. 그런 걸 아마 그릇된 방향이라고 말한다지요?”
“그렇다면 그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범인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도록 유도했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 중에 범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플 양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내시 총경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는 범인이 상당한 지위가 있는 사람일 거라고 강조했죠.”
내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맞아요. 그게 아주 중요한 점이죠.”
마플 양이 동의해 주었다.
―제리와 마플의 대화, 본문 238~239쪽
“이런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절대로 고정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범죄들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답니다. 이번 일도 그랬어요. 아주 정상적이고, 간단할 뿐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건이었죠. 물론 상당히 불쾌한 방법으로 저질러진 범행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에요.”
―미스 마플의 말, 본문 297쪽
“그래요, 아주 위험한 일이었죠. 하지만 버턴 씨,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데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해 위험을 회피한 채 이 세상을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해하겠어요?”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본문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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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일부러 여성회관에 있는 타자기를 이용해서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 물론 내용도 거짓이고 편지에 사용한 글자는 마을 사람 중 한 명의 집에서 책 일부를 뜯어와서 오려 붙인 것이다. 타자기를 칠 때는 한 손가락만 사용해서 비전문적인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 경찰은 범인을 여성으로 단정 짓는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을 어떤 식으로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신도 남자들이 어떤지는 아실 거예요! 여자가 늘 옆에서 편안하게 해 주고 보살펴 주고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대해 준다면……. 틀림없이 그 여자에게 의지하게 되는 법이죠.”
―에이미 그리피스의 말 중에서, 본문 209~210쪽
여자들조차도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논리에 세뇌당해 살고 있었던 시대였다. 사실 여성회관에 있는 타자기는 범인이 기증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그런 유치한 편지는 당연히 여자나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한번 자리를 잡은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말이다.
미스 마플의 능력이 엄청나지만 탐정 사무소(푸아로처럼)를 차릴 수도 없었을뿐더러 경찰에서는 마플을 귀찮아하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푸아로에게는 도움을 청했으면서 말이다.
작가는 당시 영국의 사회 인식과 잘못된 관습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또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을 여자인, 그것도 늙은 여성이 해결하게 만들어 통쾌함을 주었다. 물론 메건이 용기를 내어 범인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도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인간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인 부분이 다르다. 같은 핏줄도 성격이 다른 것처럼 여성과 남성도 다른 것이 분명하다. 생물학적인 것으로 거부당하거나 차별받는 것은 원시 형태의 인간들도 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원시 형태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감싸야 생존할 수 있었을 테니까. 여성과 남성이 아닌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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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적힌 글과 한 번 퍼진 소문은 되돌릴 수 없다. 소문과 글이 거짓으로 판명 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이미 받은 것이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기꾼을 용서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방법이 당하지 않는 것이라니!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는 치밀하게 계획된,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삶에서 절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현재 상황도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물론 사기꾼들은 강자한테는 찍, 소리도 못한다. 모든 범죄는 약자들에게 자행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사기를 치고 약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마성이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것 또한 끔찍한 일이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항상 정의나 올바른 쪽은 수가 부족하다.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변호사 시밍턴은 가정교사 엘시를 갖기 위해 자기 아내와 하녀를 치밀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뒤, 의붓딸 메건까지 죽이려고 하였다. 오직 자기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익명 편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숨겼다. 물론 연기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미스 마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떨까? 사기꾼들과 범죄자들의 연기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거짓말에 속은 사람이 문제라는 인식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사고방식인가. 가해자들의 논리와 같다. 속은 사람이 멍청한 것이라는.
나는 속인 사람들이 처벌받는 세상을 원한다. 자본가들(일부), 가해자들, 사기꾼들, 범죄자들(성폭행 포함)은 모두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들켜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 ‘재수 없게 들켰다’ 같은 천박함으로 살아간다.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올바른 세상일까? 그런 세상을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사기와 살인은 같은 선상에 있다. 둘다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기꾼과 살인자는 오직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죄의 무게가 커야 한다. 희생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인가?
‘법치’는 강자를 위한 도구인가?
현대사회의 모순과 왜곡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었다. 분명히 진실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걸 잡을 수가 없었다.”
―본문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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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선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쉬운 길은 나중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양심이 있어서 괴롭다면 올바른 쪽으로 걷도록 행동해야만 한다. 양심만 있고 가만히 있는 것은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양심은 올바른 쪽으로 걷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양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행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에서 광주 시민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섰던 모습이 바로 양심이다. 양심은 몸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지 머리나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양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지막 선이다. 그리고 선택과 책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내 혀와 손가락은 진실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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