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 사건』 리뷰 |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P.S :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 리뷰입니다. 그러니 작품을 먼저 읽은 후 리뷰를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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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 사건』은 193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독특한 구성이고 인간의 평범한 폭력성과 광기에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인간이 탐욕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작품이며, 살인자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잔인할 정도로 양심을 짓밟는 자, 멀쩡한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추리해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작가가 작정하고 범인을 숨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범인은 항상 마지막에 반전으로 알려준다. 그런데 ‘헤이스팅스 대위가 모르는 이야기’에서 범인일 것 같은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트의 행동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사람이 범인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일까?
헤이스팅스 대위가 서술자의 위치에 있을 때는 정보가 제한된다. 그래서 조금 답답한데 그것은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서술자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속임수를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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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푸아로) 탐정이 등장하지만 은퇴 선언 이후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 하지만 ABC가 알파벳 순서로 살인을 예고한다. ABC라는 이름과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죽음, 그리고 살인 현장에 ABC철도 책자가 떨어져 있다. 강박적으로 범죄 현장을 꾸미는 살인자의 심리에 집중하는 포와로를 따라 가게 된다.
나는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에 영문 이름은 모르지만, 첫 번째 살인이 앤도버에서 벌어진다. 애셔 담배 가게의 애셔 부인이 희생자다. 두 번째 살인은 벡스힐 해변에서 일어난다. 진저캣이라는 찻집에서 일하는 엘리자베스 바너드가 희생당한다. 세 번째는 처스턴에서 카미클 클라크 경이 살해당한다. 이때부터 ABC 살인은 언론을 덮기 시작한다. 마지막 살인은 돈 캐스터 경마장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 마리의 참새도’라는 영화가 상영된 극장에서 벌어진다. 조지 얼즈필드라는 사람이 살해당하는데 D로 시작하는 이름이 아니었다. 경찰, 언론, 시민 모두 규칙과 질서대로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을 때, 포와로만은 아니었다.
질서와 자유에 대한 사유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포와로의 생각에 집중했다. 범인의 심리와 범죄 동기. 포와로는 범죄 동기를 찾는데 골몰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헤이스팅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도) 살인자는 미친 자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포와로는 살인자만의 동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포와로는 범인의 심리가 무엇인지 사건들을 조사하면서 파악하기 시작한다.
포와로는 어느 시점부터 범인의 윤곽을 잡고 있었지만(범인을 계속 대면하면서) 확실한 증거와 범인이 사용한 속임수를 간파하기 전까지는 모두를 속이면서 수사를 진행한다. 포와로는 헤이스팅스에게 범인에 대해서 말할 때 ‘아주 멀쩡한 자’라고 강조하면서 여러 번 얘기한다. 나는 포와로와 같은 생각이다. 살인자든 사기꾼이든 그들을 미친 자로 퉁 치는 것은 그들에게 과분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멈추는 것보다 그쪽을 선호했고 선택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살인자는 잔인하고 냉혹할 정도다.
미친 자로 몰렸던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트(약자가 ABC다. 이것도 범인이 의도한 것이다.)를 유일하게 범인으로 보지 않은 사람이 포와로였다. 오히려 그를 따뜻하게 대하며 도와준다.
포와로는 마지막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범인에 대해 설명한다.
“과감하고 모험적인 기질, 안정되지 못한 생활, 영국인에 대한 편애, 매우 희미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불신, 매력적이고 친절한 태도―찻집의 처녀를 유혹해 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지요. 치밀한 성격―그는 ABC의 목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그리고 소년 같은 성격―”
헤이스팅스가 보기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포와로는 했었고, 그 증거들을 모아서 진짜 범인을 잡았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모든 증거를 가지고 진짜 범인을 몰아세우는 포와로의 방식은 애거서 크리스티 이후에 나온 추리 작품들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게 확실하다.
우리도 의심이 들 때는 포와로처럼 증거들을 과학처럼 모은 다음 추론을 통해(포와로는 회색 뇌세포를 사용하라고 한다.) 확신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언론뿐만 아니라 SNS, 이제는 AI 딥페이크까지 가짜가 세상을 덮고 있다. 가짜 속에서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포와로처럼 증거를 모으는 것인데, 현대사회는 증거도 가짜로 심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각을 넘어 사색의 깊은 단계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독서와 글쓰기밖에 없다. 거기에 몸으로 진실을 탐색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인문학과 과학적 사고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이성과 감성이 모두 필요하고 인간은 모두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법으로 나누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증명이 필요한데, 성찰한 인간은 그렇지 않은 인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그 길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이 성찰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성찰한 사람은 감정을 조절할 줄 안다. 참거나 속이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을 강물에 띄울 수 있다는 의미다.
어쨌든 ‘포와로의 설명’을 들으면서 소름을 넘어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네 개의 살인 중 하나의 살인을 위해 세 개의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계획하고 실행한 범인의 주도면밀함과 교활함에 치가 떨린다. 그 똑똑한 머리를 옳은 일에 사용하면 좋을 텐데. 그래서 정의감과 용기의 가치가 높은 것이 아닐까.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기까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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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범죄를 일으킨 살인자를 보면서 미친 자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멀쩡하고 머리가 좋은 자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자기가 원한 단 하나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세 명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죽였고, 죄 없는 인물을 가짜 범인으로 만들어 그 사람의 인생까지 무너뜨리려고 했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살인자든 모두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탐욕자며 공감하지 못하는 불쌍한 자이다. ‘양심’이라는 선물이 인간의 몸에서 사라진 보잘것없는 자다.
진짜 범인은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도구일 뿐인 자기 세계에 갇혀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자다. 이미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감옥에 가둔 자, 양심을 경험해 보지 못할 안타까운 자다. 그래서 미친 게 아니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제왕적이고 위험하지만 머리만 좋은 자(여기서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자기의 탐욕을 채우는 쪽으로만 좋다는 뜻이다.)다.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만 몰려 있으니 진심 어린 관계란 없을 것이다. 작품 속 진짜 범인과 같은 자들이 현대사회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들이 권력을 잡거나 기득권층에 속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도 여전하지 않은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짜 범인과 같은 탐욕과 시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매 순간 양심과 탐욕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칸트가 말한 순수 이성대로 살아가려면 ‘자기성찰’의 길밖에는 없다. 범죄자들이 자기성찰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게 살인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말한 ‘양심’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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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영국의 상황이 담긴 추리소설인데, 현대사회와 닮은 부분이 많다. 작품에서는 한 명의 살인자지만 이런 구조와 시스템이 국가나 사회에 들어오면 끔찍한 지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류사를 봤을 때 국가 탄생 이후 얼마나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어 왔는가.
작품 속 진짜 살인자는 그런 사회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여전히 포와로와 같은 사람들이 반대쪽에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양심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양심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이끌어준다. 또한 양심이 있다면 살인 같은 행위를 할 때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양심이 고장 나는 것은 가장 끔찍한 벌이 아닐까.
나는 철학 종류의 책을 좋아하고(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詩다.) 전체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떤 글을 읽고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후 글로 표현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글이 객관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살피고, 개요를 짜면서 다양한 각도로 생각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포와로가 말하는 ‘회색 뇌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색깔이 뚜렷한 문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혼자 있는 게 내 인생에는 더 중요하다.
진짜 범인이 사회화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충분히 배웠다. 그런데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것 같다. 그러니 인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은 계속 되지 않을까.
수많은 진실을 무수한 가짜로 둔갑시키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어떤 심리학 전문 서적보다 유용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많은 사색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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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도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