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 괴롭다. 그래서 외부로 도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마주봤을 때 인간은 성장하고 성찰한다. 그래야만 온전한 자신을,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여섯 작품 중 세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추리소설처럼 반전의 반전을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이토록 치밀하게 통찰할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문체가 워낙 흡입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몰입도가 높기도 했지만 구성적인 면이 치밀하다. 얼마나 고민하고 수정을 했을까?
물론 마지막의 반전은 인간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소름 끼칠 정도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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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스쿠다모어는 영국 런던에서 떨어진 한적한 도시에 살고 있는 중산층 부인이다. 남편은 지역 변호사로 일하는 로드니이고 아들 하나, 딸 둘을 기른 어머니이다. 작가가 필명으로 활동했던 시기가 1930년부터 1956년인 점을 감안하고 작품을 이해한다면 조앤의 행동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모르더라도 현대를 사는 인간의 심리와 너무도 닮아 있는 인물이다. 인간을 지독하리만큼 탐구한 작가의 집중력이 작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조앤은 막내딸 바버라의 병간호(조앤의 입장에서)를 위해 바그다드에 왔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호텔에서 우연히 동창 블란치를 만난다. 블란치의 등장은 조앤에게 자신의 삶을 혼자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조앤은 단 한 번도 혼자 있었던 적이 없었다. 이 여행을 제외하고는. 조앤은 영국에서 살 때 항상 사람들 틈에 있었고,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결론 내리며 살았다.
폭우로 기차가 지연되고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숙소에 며칠 머무리게 된 조앤은 블란치로 시작해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사막의 태양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며 내면을 마주하는 일을 회피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위선과 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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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사막으로 설정한 점도 설득력이 있다. 『어린 왕자』에서 ‘나’가 사막에 불시착했기 때문에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대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조앤은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현대인의 삶과 닮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예전의 모습을 반복하면서 살게 된다. 진정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일과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일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오히려 타인을 대할 때보다 자신을 만날 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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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하지만 대부분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경험과 체험으로 반복된 일들은 비슷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나 당황했을 때는 예측 불가능하다. 바로 그때 자신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신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반복된 일상이나 습관일 확률이 높다. 물론 그 습관을 올바른 가치관으로 훈련한다면 좋겠지만 일상은 그렇지 않다.
온전히 자신에게 단 5분이라도 집중하는 시간이 있을까? 눕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의미 없고 진심 없는 대화들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샤워를 하거나 화장을 할 때는 자신의 눈동자를 고요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살면서 자신을 가장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바로 그런 인간의 속성을 치밀하게 드러낸다. 아프지만 깨달아야 하고 마주 보고 인정해야 하는 과정을 말이다. 작품은 조앤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족의 입장에서 보는 조앤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보는 조앤은 추론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바버라가 로드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한 로드니의 내면 소리를 통해 조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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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고 조앤을 평가하거나 인물들을 비판하고 있다면,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조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진심이 없는 진실과 진실을 외면하는 조앤 그리고 진실을 말하기에 지친 그녀의 주변인들. 그 모습을 통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타인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조앤은 봄에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 한 구절을 제목으로 설정한 작가의 상징성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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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여섯 작품
Giant’s Bread(1930), Unfinished Portrait(1934), Absent in the Spring(1944, 봄에 나는 없었다), The Rose and the Yew Tree(1947), A Daughter’s a Daughter(1952), The Burden(1956)
P.S. 2 : 『애거서 크리스티 코드』 연재는 계속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남은 작품을 구해서 읽게 되면 연재 리뷰는 계속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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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도서 『야간비행』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