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고 쌉싸름한, 뜨겁지만 어쩐지 창백한 사랑
Story.
강가를 따라 펜션이 즐비해 여름마다 피서객이 가득한 경기도 외곽의 작은 동네 '증평'에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해솔이네 모자가 이사 온다. 증평에서 소방관인 아빠와 몸이 아픈 엄마와 살던 도담은 서울에서 온 해솔에게 관심을 가진다. 여느때와 같이 아빠와 강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도담과 도담의 아빠는 우연히 물에 빠진 해솔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해솔과 도담은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이성적 감정으로 발전한 두 사람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는데, 바로 도담의 아빠와 해솔의 엄마가 밀애를 나누는 정황이 포착된 것. 이를 알게된 도담과 해솔은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두 사람의 뒤를 밟다가, 불의의 사고로 각각 아빠와 엄마를 잃게 된다. 둘은 같은 아픔을 지닌채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미안해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재회하기를 반복한다.
연애라는 건 상대방이라는 책을 읽는 거라고, 그렇게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거라고, 태준은 말한 적이 있었다. 도담은 자신이 펼치고 싶지 않은 책,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책처럼 느껴졌다.
(...)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너 별로 안 행복해 보여. 나도 별로 안 행복하고."
"사랑해, 도담아."
(...)
혼자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해솔을 생각하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해솔을 떠올리면, 이미 지나간 슬픔인데도 왜 이다지도 쓸쓸하고 가슴이 아픈걸까. 도담은 해솔을 안아 주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눈빛으로는 이미 수십 번 끌어안았다.
(...)
도담은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손끝이 저렸다.
(...)
도담은 그날 이후 자기 감정을 의심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면 강하게 의심했고 행복을 느끼면 자신이 겪게 될 낙차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에도 맘껏 행복해하지 못했다.
(...)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Review.
- 지독하고 쌉싸름한, 뜨겁지만 어쩐지 창백한 사랑의 단면을 맛 본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서 심장이 저릿하고 코끝이 매웠다.
- 나는 왜인지 선화와 승주에게 감정 이입이 됐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을 의심해야 하는 이 상황이 그들을 무너지게 했다. 그 마음을 알고도 해솔의 곁을 떠나지 못했던 선화의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너무 행복하지도 그렇다고도 너무 불행하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 사랑을 넘어 인류애적인 그 마음. 읽는 동안 너무 마음이 아렸다.
- 지독한 인연을 미워하며 가장 날카로운 말을 골라 도담과 해솔의 사이를 갈라놓아야만 했던 도담의 엄마 정미의 마음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도담이와 해솔이, 선화와 승주, 정미 모두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 사실적이고 섬세한 문장 덕에 읽는 동안 장면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생되었고 이내 드라마로 실사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도 취향일 것이라 확신한다. 따뜻한 다홍빛의 사랑보다 서늘한 검푸른빛의 사랑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