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서는 사람들이 PC통신이 만들어낸 인터넷 게시판과 동호회 활동을 통해 힙합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갔다. PC 통신 힙합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랩이 댄스음악의 양념처럼 소비되고 수준 낮은 랩이 득세한다고 생각해 댄스그룹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배경에서 그들은 진지하게 PC통신에서 힙합과 랩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나우누리에 있었던 SNP와 하이텔에 있었던 흑인음악 동호회 가 있었는데 이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마스터플랜이라는 클럽 중심에서 언더그라운드 씬이 발달하게 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가리온이다.
가리온-한국힙합의 큰 형님
가리온은 1998년에 결성된 대한민국의 힙합 그룹으로 지금까지 가리온의 여정은 지속되고 있다. 가리온은 MC메타, 나찰, J-U의 멤버로 구성되어 활동하였지만 J-U의 탈퇴 이후 MC메타와 나찰 두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가리온은 힙합을 하나의 예술양식으로 탐구하고 고민했기에 이 고민과 탐구 덕분에 한국에서도 힙합의 예술이 피어나게 되었다. 후배 양성에도 기여했던 가리온은 자신들의 힙합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하였다.
가리온 1집-Garion
2004년 1월 9에 발매된 가리온의 1집 앨범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체계를 확립한 걸작이다. 이스트코스트 힙합(붐뱁) 사운드들이 나타나는 앨범에는 한국의 옛 음악에 나오는 사운드들이 들어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의 비트가 독특하고 창의적이게 느껴진다.
사회에 대한 저항과 가리온만의 철학적인 가사, 그리고 삶의 고뇌가 담긴 가사는 가리온에게는 힙합이 삶의 방식이고 문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힙합은 누군가의 삶을 담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하는 앨범이다.
가리온 2
1집보다는 다양한 프로듀서의 참여로 다양한 느낌의 곡들을 접해볼 수 있는 앨범이다. 1집에서는 이스트코스트 힙합 비트가 강력했다면 2집은 트렌디하고 소울풀한 비트들이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등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사랑 얘기를 담은 힙합 곡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멜로디컬 한 느낌이 드러나기도 한다.
다양한 비트와 많은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인해 다양한 트랙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난잡함이 아닌 일관성이 있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앨범이다.
가리온의 1집과 2집에서 느낄 수 있는 건 한국어 가사로 수준 높고 철학적인 랩 메이킹과 단어와 문장으로 맞춘 라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리온의 가사에 담긴 자신들의 힙합에 대한 철학과 삶은 지금의 한국힙합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그리고 그 가리온의 가사는 내가 지금 한국힙합을 통해 받는 감동과 살아있음을 가능하게 했다.
90년대 때 한국에서의 힙합은 외래문화였다. 그 외래문화가 로컬라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가치를 그 외래문화에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서와 가치를 힙합이라는 문화에 부여했을 때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어려운 일이었다. 가리온은 이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 힙합의 로컬라이징과 한국힙합은, 언더그라운드 씬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그 정의는 지금의 한국힙합의 뿌리가 되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힙합이 계속 진행되고 유명해지고 이 씬이 더 커질 수 록 잊으면 안 되는 것은 가리온의 철학이라 생각한다. 또한 가리온의 음악은 지금도 영감이 되고 있다. 가리온은 언제나 한국힙합 곁에 있을 것이며 있어야 한다. '한국힙합이 단순히 미국에 있는 힙합을 받아들인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한국의 사운드. 한국의 정서,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을 투영한 예술이자 문화'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게 한 시작점은 가리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