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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l 27. 2016

여름아, 방학을 부탁해!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5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오늘부터 드디어 공포의 여름 방학이 시작됩니다. 며칠 전부터 동네 엄마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했어요. ‘아이는 방학이고 우리는 이제 개학이야!’ 방학엔 아이들과 신나게 놀 수 도 있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면 되지, 라는 생각...네 그래요 작가님. 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 현실이듯,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이상과 달리 현실 그 자체잖아요.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의 방학이 마냥 반갑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삼시 세끼! 아침먹이고 돌아서면 또 점심, 어쩌자고 밥 때는 툭 하면 돌아오는지, 창피한 말이지만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려 해도 하루에 한번 정도는 아이에게 인상을 쓰게 됩니다. 아무래도 저는 조용하고 고상하며 품위 있는 엄마는 못되는 것 같아요. 한때 마음 깊이 가지고 있던 좋은 엄마에 대한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에 치어 모두 날아가 버린 걸까요? 우리들의 연애와 결혼이 불공평한 시스템 안에서 그렇게 변색되었듯 말입니다.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이 딱 그렇습니다. 학교 밖 더 큰 세상으로 나가 큰 배움을 얻어갈 수 있는 신나는 방학은 솔직히 한정된 계층에만 허용된 비싼 소비재가 된지 오래니까요. 방학 때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나? 에 대한 문제는 오롯이 우리 엄마들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전업주부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할 생각에 골치가 아프겠지요.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또 그들대로 행여 아이가 방치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햇볕이 강해 놀이터에 나가도 오래 뛰어놀 수 없을뿐더러, 많은 아이들이 학원으로 향하는 오후 시간에는 놀만한 친구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것이 사실이에요.  

     

결국 참다못한 엄마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거나 방학특선 영화를 보여주러 극장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돈과 연관되는 일이라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결국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와 부둥켜안고 집안을 뒹구는 일상을 보내야 합니다. 날도 더운데 삼시 세끼를 챙겨 먹여가며 방학 맞은 아이들과 씨름하는 일, 네 그래요 작가님. 이것이 바로 한정된 계층이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엄마들이 느끼는 방학의 민낯입니다. 사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방학이면 골목에 모여 물총싸움을 하거나 밤늦도록 고무줄놀이를 하곤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흔치 않은 광경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물놀이는 수영교실에서, 만들기는 미술 교실에서, 줄넘기마저도 학원이나 태권도장에서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배우는 아이들.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몸통은커녕 깃털도 되지 않는 한낱 평범한 엄마인 저는 이런 시스템이 못마땅해도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에요. 남들과 다른 길, 샛길이나 외딴 길로 가는 수밖에요.

     

게다가 우리는 영포티(Young Forty), 1990년대 X세대라 불리며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엄마들 아닙니까? 예전처럼 자식에게 무한 희생하지 못하는(할 수 없는) 우리는 아직도 듀스의 여름 안에서혹은 인디고의 여름아 부탁해를 들으며 당장이라도 동해바다로 떠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아이들의 방학이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도 너무 좌절하고 실망하지 않기로 해요. 한정된 계층이 돈으로 시간을 살 때,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해 이 길고 지루한 여름을 버텨내면 되니까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아직 구체적인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작가님의 큰아이도 방학이 시작되었나요? 문득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학 생활도 궁금해집니다. 코앞에 닥친 길고 지루한 여름 방학,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또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겠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린 참 버티는 건 잘해요.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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